그리 오래전이 아니어도 애 어른 할 것없이 지금같은 풍족한 장난감이나 놀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물며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현재의 최고참 어르신들은 취미라 할만한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그 연배 어르신 중의 한 분이 오늘 얘기의 주인공 박하자(朴夏子)씨다.
그가 어릴 떄부터 유달리 즐긴 놀이가 종이접기였다. 헌 종이로 만든 비행기를 허공에 날리며 혼자서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를 만드는데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가 20대가 되어 택한 직업이 항공사 스튜어디스였다.
십여년간 비행기를 타며 승무원, 검열승무원, 교관, 사무장 등 항공사 근무를 하는 동안은, 종이놀이는 커녕 책과 레포트, 서류에 파묻혀 지내야 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슬하의 남매가 성장해 보살핌이 필요없게 되고 자신의 일에서도 은퇴한 노년에 접어든 어느날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종이공예란 현수막이 눈에 띄더란다.
그렇게 반백년이 훨씬 넘은 동심이 일깨워진 날부터 10여년. 배우고 공부하고 실습하고 자격증 따고... 그가 종이로 만든 소품들은 어느새 "예사롭지 않은 예술작품"으로 발전해갔다.
창작의 방식도 한지 등을 소재로 접기, 감기, 부조, 조각, 그림, 공예, 일러스트 등으로 다양하다. 주변의 권유로, 이런 세월을 녹이고 뭉쳐 세상에 단 하나 뿐일 수 밖에 없는 작품들을 간추린 전시회가 열리게 된다.
"종이의 평면에 생명력을 불어 꽃이 되고 새가, 나무, 놀이가 되고 옛날로 데리고 가 아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바람"을 담았다. 아울러 이런 모습이 "과거를 회고하게 해주고 미래의 모습으로 그려진다면 어린이와 어른들을 어우러지게 이어주고 멋진 꿈의 비행이 될 듯한 기대"도 없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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