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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6

세종마을(서촌)과 윤동주(尹東柱)

윤동주(尹東柱: 1917~ 1945.2) 하숙집

북간도 출생으로 1938 연희전문 문과 입합해 아현동, 서촌 일대 하숙생활했다.
1939년 ‘소년(少年)’지 통해 등단.

1941년 후배 정병욱과 함께 소설가 김송 누상동 집에서 하숙. 이곳이 서촌의 윤동주 하숙집으로 전해지고 있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의 작품들이 이 무렵 전후 탄생했다.
1941년 12월 연전 졸업한 후, 시집 내려던 원고를 후배 정병욱에게 맡기고 1942년 3월 일본으로 떠났다.
릿교(立敎)대를 거쳐 교토 도시샤(同志社)대 영문과 재학 중 1943년, 사상범으로 체포…
징역 2년 선고를 받았다. 
후쿠오카형무소 복역중 건강악화, 요절했다.(생체실험 피해설도 있다)

정병욱(1922~1982)
학병 끌려가며 어머니에게 윤동주 원고 부탁
1948년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간본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했다.
정지용(鄭芝溶) 서문과 강처중(姜處重)의 발문 및 유령(柳玲)의 추모시…「서시(序詩)」 포함한 31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수록돼 있다.

창의문 / 청운공원 주변

윤동주 문학관임 2012년 7월 개관됐다.
수도가압장으로운우영되다가 폐쇄된 곳으로 윤동주 이야기 입고 새롭게 탄생했다.
정문 왼쪽 나무덱계단과 길을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면 '시인의 언덕‘에는 150년 된 소나무가 버티고 있다.
나무 아래에 시비(詩碑)…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序詩)‘ ㅡ  언덕 아래 작은 정자가 서시정(序詩亭)이다.

인근의 청운문학도서관은 2014년 11월 개관한 최초의 한옥 공공도서관이다.

2019-04-26

겸재(謙齋 鄭敾)와 사천(槎川 李秉淵)

 성리학을 이념기반으로 하여 조선의 고유문화가 절정기에 이르는 시기를 ‘진경시대’라 할 수 있는데, 겸재 정선으로부터 비롯된다.
금강산 관동팔경 등, 우리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진경회화의 토착화를 이루었고 풍속화의 경우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그려냄으로써 회화 소재의 폭을 확대하였다. 겸재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시도는 심사정(沈師正), 강세황(姜世晃), 김홍도(金弘道), 신윤복(申潤福) 등으로 이어졌다.

겸재(謙齋 鄭敾,1676∼1759)
몇 대째 과거 급제자 없던 양반가 출신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관직도, 명성도…
시서화 일체 중시…당시 문인들 추세=> 진경(眞景)산수화 물꼬
전통 수묵화법, 채색화에 더하여 자신 만의 필묵법 활용.

300여년 전 그림=>이 지역 풍경 복원의 토대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수성동(水聲洞)’ =>계곡 복원의 토대
‘장동(壯洞);인왕산 남쪽기슭~북악산 계곡…효자, 청운, 옥인동 지역…

76세 작품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응축된 정기 + 강인함 충만
산 중턱 운무에 감싸인, 정자 한 채… 시적 정취…

[비교] 고흐(1853~1890)와 프랑스의 두 도시
네덜란드 출생, 1888년 남불 아를로 이주… 해바라기, 카페, 다리 등 소재 적잖은 작품
1890년 파리 북쪽 '오베르 쉬르 우아즈'마을에서 권총 자살.
극적 삶의 흔적 밴 두 도시….대부분 작품 배경 없어졌지만 그림 토대로 사라진 흔적 복원하거나 관련 작품 전시

겸재는 이병연(李秉淵) 등과의 교유를 통하여 일상 속의 자연과 생활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사천이 겸재보다 5살 연상이지만아주 가깝게 사귀고 정이 두터웠다. 당시 “시는 사천, 그림은 겸재 아니면 쳐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시와 그림이 유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천 이병연(槎川 李秉淵, 1671~1751)]
이병연의 시 + 정선의 그림=> 상호 보완적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자’는 약속 아래 서로 작품 비평, 격려… 조선 예술사상 화려한 꽃 피워
시냇가 풀밭 노송 아래 두 노인이 시축과 그림을 놓고 비교하며 담론하는 한유(閒遊)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실린 이병연의 화제(畵題);

“나와 겸재는 시가 가면 그림이 오도록 왕복을 기약하여 내 시와 그대의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자 하였다. 시와 그림의 경중을 어찌 값으로 따지겠는가. 시는 가슴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을 휘둘러서 이루어지니, 누가 쉽고 누가 어려운지 모르겠더라.”

겸재가 사경 헤매는 이병연의 쾌유를 빌면서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 216호, 리움미술관) 그림도 있다.
“제색”이란 “큰비가 온 뒤 막 개일 때의 풍광”이란 뜻. 1751년 윤 5월의 19일부터 25일 아침까지 이렛 동안이나 지루한 장마비가 내리다가 25일 오후에 완전히 개었는데, 바로 그날 오후 겸재가 이 그림을 단숨에 그렸다고 한다.
이병연은 이 그림 그려진지 나흘만인 5월 29일에 눈을 감았다고.

2019-04-17

권력과 감성의 모순에서 방황? 노천명

 <사슴> '시인'이지만 소설가/언론인… 다재다능

1911년 황해도 태생… 부친 사망뒤 1919년 경성 체부동 이모 집에서 살면서 진명여고 거쳐 1934년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 <조선중앙일보> 기자 4년간 근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시 <사슴> 발표…1938년는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 <조선일보> 기자.

1943년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 기자
'승전하는 날', '출정하는 동생에게', '진혼가' 등 다수의 친일 작품 발표.

광복 후 활동 자제, 1949년 누하동으로 이사, 일본 유학 준비중 6.25 발발.
월북 작가 임화, 김사량 등 주도하는 '조선문학가동맹' 가입, '문화인 총궐기 대회' 등 행사 참여….
좌익혐의로 20년 실형 선고… 구명운동, 6개월 투옥뒤 1951년 4월 석방.
1957년 6월 재생불능성 뇌빈혈로 짧은 생 마감

권력 앞에서는 한낱 갈대에 불과?
낭만에 잠긴 소녀 연상되지만, 오만할 정도의 도도함과 결벽증, 독신
"대처럼 꺾어질망정 구리 모양 휘어지기 어려운 성격" <자화상>에서 고백.



2017-04-26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의 자취

‘가사 문학의 대가’…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등 조선시대 대표하는 가사와 훈민가 등 빼어난 시조… ‘송강가사’
또래 율곡 이이, 우계 성혼(1535~1598)
성산별곡; 25세때에 전남 담양군 남면에 있는 성산(별뫼)의 경치와 식영정, 서하당을 배경으로 김성원을 그리워하며 쓴 것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선조의 은덕 기리며 지은 가사.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정철의 사미인곡이 초나라의 굴원이 쓴 서정시 이소(離騷)에 버금가는 작품이라고 극찬.

군자(君子)? 독철(毒澈)? 상반된 평가
서인 신흠: “정철은 평소 지닌 품격이 소탈하고 대범하며 타고난 성품이 맑고 밝으며, 집에 있을 때에는 효제(孝悌)하고 조정에 벼슬할 때에는 결백하였으니, 마땅히 옛사람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동인의 한 분파인 북인측에서 주도하여 편찬한 [선조실록]; “정철은 성품이 편협하고 말이 망령되고 행동이 경망하고 농담과 해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원망을 자초(自招)하였다.”

태어난 곳; 청운동 123 (현재의 청운초등학교 경내)

2017-04-18

자수궁과 명나라 여인 굴씨(屈氏) 이야기

 <옥인동 45번지 현 군인아파트>
문종실록; "임금이 무안군(이방원에게 살해된 이복동생 방번)의 예전 집을 수리하도록 명하고 이름을 자수궁(慈壽宮)이라… 선왕(세종)의 후궁을 거처하도록 함이었다.“ (1450년)
뒷날, 연산군 생모 폐비 윤씨, 중종 비 단경왕후도…
광해군8년 경덕(=>경희궁), 인경, 자수 등 궁을 지으며 인왕산 아래 인가에 수천채를 철거했는데, 이원(尼院; 비구니들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도 활용, 많을 때는 5천여명의 비구니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인조반정후 자수궁은 '자수원(慈壽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경복궁에서 자수궁 가는 길 사이에 있던 백운동천(白雲洞川)에 '자수궁교(慈壽宮橋)'라는 돌다리를 세워졌었는데, 1927년 백운동천에 암거 공사를 진행하며 헐렸다. '자수교(慈壽橋)', '자교(慈橋)'라고도 불렸다. 근처 교회 이름도 '자교교회'가 있다.

명나라 여인 굴씨 (明國宮女 屈氏, 1638 입국)
明나라 패망 => 淸 황실 귀속 => 조선으로…
仁祖14(1636)에 일어난 병자호란 강화조약에 따라 심양(瀋陽)에 인질로 있던 소현(昭顯)세자 귀국 때 함께…
천주교 선교사 아담 샬 주선… 세례 받은 5 환관 + 4 궁녀 함께 입국?
1645년 소현세자 귀국 후 두 달 만에 죽자 淸 환국령
오랑캐 나라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자수원에 머물다가 70세에 사망
비파 잘 탔고, 손가락과 휘파람으로 인왕산의 새와 짐승 불러내 대화… 길들이는 방법을 보급하기도…
고향 가는 큰 길 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 따라 고양 장령산 기슭에 안장
선비 근곡 김숙(芹谷 金璹)이 ‘屈氏過墓’ 詩도…
似羅裙花似鈿 (사라군화사전) 풀잎은 비단치마요, 꽃은 비녀 같구나.
斷原埋玉幾經年 (단원매옥기경년) 이 언덕에 그대 묻은 지 그 몇 해던가
年年寒食淸明節 (년년한식청명절) 해마다 한식 청명절엔
惟有宮娥送紙錢 (유유궁아송지전) 명나라 궁녀 위해 지전이나 보낼까 하네.
2001년 4월 묘역 정비
墓碑 前面 「昭顯世子淸國瀋館侍女 屈氏之墓」
後面 「昭顯世子께서 淸나라 瀋館에 계실 때 淸 太宗이 世子의 侍中을 들게 하였다. 世子께서 還國時(仁祖23年, 1645年) 入宮하여 계시다가 돌아가셨으며, 本人 遺言에 따라 故鄕 가는 길목인 이곳에 모시었다. 2001年 4月 日 建立 昭顯世子 宗中」

자수궁교(慈壽宮橋) 터 -「굴」씨가 새와 놀던 ‘굴다리’, ‘새다리’ …
1830년 경에 만든 「한경지략」에서는 ‘자수궁교’ 로, 1840년 경에 만든「수선전도」에는 “자수교”로 표기
옥인동 19-33 일대, 근처 자수궁에서 따온 이름
현 신한은행 효자동지점과 종로프라자 약국 위치에 있었으나, 자하문 길을 확장할 때 복개…
근처 자교교회는 자수궁의 자(慈)를 자주색 자(紫)로 바꾸고 다리교(橋)를 그대로 사용한 이름이다.

[참고] 현 자하문로는 왕복 4~6차선 넓은 도로.
1970년대 말까지는 청운동에서 시작한 하천이 이 도로의 현재 서쪽 변을 따라 흘렀다. 백운동천(白雲洞川)- 청계천 본류다. 1930년쯤에 복개되고 나란히 늘어선 여러 집들이 철거되면서 현재의 자하문로가 된 것이 1978년. 효자아파트가 건립되고 9년 만의 일이다.

2017-04-17

야수파 화가 구본웅과 시인 이상

 산후조리하던 어머니 숨지고… 두살 때 댓돌 위로 떨어져…
필운동 89, 90(현 소호갤러리 뒷편)에서 태어나
황해도 연백 능성 구씨 세거지로… 4개월 후 모친 사망… 2살 때 하녀 등에 업혀 젖 동냥 다녀 오다가 댓돌위로 떨어져
서울로 왔으나 ‘곱사등’ 진단
16세 되던 1921년 4년제 보통학교 신명학교(현 배화여고 자리) 졸업
종로 YMCA의 ‘고려화회’에서 고희동과 나혜석으로부터 서양화 사사
1928년 일본 건너가 ‘태평양미술학교’ 본과 졸업
‘이과전’ 에 조선인 최초 입선
야수파적 터치… 이상 모델「친구의 초상」(1935년) 그리기도…
작품 상당수 수원 자택에서 6.25때 불타… 남아 있는 작품 별무
1953년 2월 급성 폐렴으로 사망…

4살 아래 동창 김해경(李箱)과 얽힌 이야기...
1926년, 숙부(구자옥; 당시 YMCA 간사)의 졸업선물 사생상(寫生箱)을 김해경에게…
이에 감격…자신의 호에 상(箱)자 넣고 이(李)씨 성 …
일본에서 1933년 귀국한 구본웅- 폐결핵 앓던 이상을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데려가 요양
기생 ‘금홍’과 눈맞아 서울로 데려와 구본웅 후원으로 종로 1가에 ‘제비다방’ 오픈
이상은 구본웅의 나이 어린 이모 변동림(1916~2004, 경기고녀 졸업, 이화여전 중퇴, 계모 변동숙의 이복동생)과 1936년 혼인
결혼 이듬해 1937년 이상 도쿄에서 사망… 변동림은 김환기 화백과 1944년 재혼-김향안(金鄕岸)으로 개명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학에 새긴 인상 강렬
초현실주의적 접근, 놀림이나 역설 또는 조롱이나 풍자…
1934년 조선중앙일보 연재 15편의 연작시 《오감도(烏瞰圖)》…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쳐 연재 중단될 정도….
《날개》, 1936년《조광(朝光)》지에 발표… 큰 화제
프롤로그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로 시작, 할 일 없는 '나'의 아내는 매춘부...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파격적 소설.
서촌에 머무르던 특히 1931~32년 사이에 수많은 작품 생산… 당시 구본웅, 이태준, 박태원, 이무영, 조지훈, 이서구 등 예술인들과 어울려…
친부모와 떨어져 어릴 때부터 살던 서촌 큰아버지댁
작품《종생기》에서 '10대조의 고성'이라고 표현
행랑채 사랑채 딸린 넓은 한옥… 필지 쪼개지며 옛집 흔적 없어져…
현재는 작은 가게들 10여채..'이상의집'에 이런 설명…
"….. 천재문학가 이상이 세살부터 스물세살까지 살았던 집‘터’의 일부에 자리한 문화공간… 그가 실제 살았던 집은 아니지만 이상과 관련한 기록이 남아있는 유일한 장소로서 의미… 2009년에 문화유산 국민신탁이 첫 보전재산으로 매입…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관리·운영…"

한국화가 이상범

생전에 단 한번도 개인전 열지 못한 이유?
표구를 하기도 전에 작품이 바로 팔려버렸기 때문…?
독자적이면서도 전통 산수화의 맥을 이어 향토색 짙은 작품
근대 한국화를 빛낸 화가 중의 하나로 평가

생활 어려워 중학교 대신 서화미술원(書畫美術院) 입학
오원 장승업 제자 화원화가 소림 조석진이 운영했던 서화미술원…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 소림 조석진으로 이어지는 조선 산수화풍의 전통 계승

동아일보 삽화도 담당하다가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삭제 사건 문제가 되어 쫓겨나…
일제말 친일 행보 때문에 지탄도…

1933년 자택에 청전화숙(靑田畫塾)을 설립,
박노수 화백 등 후진 양성
누하동(樓下洞)에 있는 이 집/화실; 2005년 4월 등록문화재로 지정
살던 모습과 화구 등 원형이 그대로 일반인에게 공개

비운의 화가 이중섭 (李仲燮; 1916~1956.9.6)

1937년 일본 분카학원[文化學院] 미술과 입학
졸업하던 1940년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출품하여 협회상 수상. 1943년에도 같은 협회전에서 태양상(太陽賞) 수상.

1945년 원산에서 결혼, 2남.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한국명 이남덕)에게 매일 그림엽서 전달…?
1945년 5월 결혼, 1946년 원산사범학교 미술 교사로 봉직.
6·25 때 원산 탈출
제주도 거쳐 부산에 도착
이 무렵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통영 등지로 전전.

1953년 일본에 가서 가족들 재회
며칠 만에 다시 귀국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40세에 적십자병원에서 사망.
무연고로 3일 방치, 홍제동 화장터- 망우리공동묘지에 안장. 1956년 9월 6일.

떠도는 생활, 1954.07~ 서촌에서 5개월 머물며 이듬해 열 개인전 준비
디프테리아로 죽은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형상된 여러 작품들에서 어린 아이들이 벌거벗은 채 있다는 이유로 춘화로 낙인 찍혀 철거
그나마 전시돼 팔린 그림조차 돈을 떼이는 등… 기회가 되리라 기대했던 개인전은 그를 더욱 지치게…

우리나라 근대 미술 3대 거장 중의 한 명
최근엔 각 도시…이중섭 흔적 찾아내려 난리...
1956년 작; 돌아오지 않는 강

박노수(藍丁 朴魯壽; 1927~ 2013) 미술관

본래는 1938년 윤덕영이 딸 위해 만든 집터였다.
후에 고 박노수 화백이 40년 살던 집을,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 2013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 종로구립미술관.


배우 이민정의 외할아버지
1946년 서울대 제1회화과(한국화) 첫 입학생
國展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禪的 분위기 독특한 화풍 개척.
제4회 국전에 20대의 젊은 나이로 '선소운(仙簫韻)'을 출품, 동양화부문 최초로 대통령상 받으며 화단의 주목

한국 최초 서양화가 고희동 선생이 젊은 박노수 화백에게 화두처럼 던진 ‘고예독왕(孤詣獨往; 외롭게 홀로 가는 작가의 길은 고독하다)'라는 글귀 평생의 지침

겸재의 장동팔경첩 중 한폭 ‘水聲洞’

 2010-09-15 매일경제 기사

…오세훈 서울시장은 15일 "내년 6월까지 종로구 수성동 계곡 녹지조성 공사를 완료하겠다“…… 수성동 계곡은 조선시대 화가인 겸재 정선이 즐겨 그린 인왕산과 계곡의 배경이다. 경관이 뛰어나 겸재 정선 외에도 추사 김정희 시구 등 많은 작품 속에 등장했다. 하지만 1971년 지은 종로구 옥인동 시범아파트에 인왕산이 가리고, 계곡 암반이 복개도로와 콘크리트로 덮여 경관이 훼손됐다. 이에 시는 지난해 2월 옥인동에 위치한 옥인아파트 308가구에 대해 토지와 건물 보상을 마치고 철거를 시작했다......
철거공사가 끝나면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와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전문가 검토와 고증을 거쳐 계곡을 원형 그대로 복원할 계획이다……

1968.1.21.사태 이후 일반인 출입 금지
1971년 옥인 시민아파트 건설
1993년 인왕산 다시 개방
2011년 옥인아파트 철거, 겸재 그림속 풍경 되살려…

[수성궁 생생하게 묘사된 《운영전》]
조선 시대의 고전 소설《원제:수성궁몽유록》
정확한 창작 시기와 작자가 알려지지 않은 작품
주인공이 꿈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지은 몽유록 형식…
원본 모른 채, 줄거리 비슷한 한글본/한문본 20여 종…

남녀간 사랑을 주제로 다룬 애정 소설
안평대군 사저인 수성궁에 살던 궁녀 '운영'이 궁을 찾은 김 진사와 운명적 사랑에 빠져 밀회
발각되자, 탈출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자, 결국 자결

소설 속 궁녀 '은섬'이 안평대군에게 고하는 장면
"남녀의 정욕은 음양으로부터 부여받아 귀천을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깊은 궁궐에 갇히고 난 뒤에는 이 한 몸 외로운 그림자와 짝하여, 꽃을 보고 눈물을 삼키고 달을 마주해서는 슬픔으로 넋이 나갑니다."

2016-11-26

높지도 않은 '인왕산'에 얽힌 이야기들

 전설 혹은 예언…
-인왕산 / 북한산 일대 많은 호랑이…고려 강감찬 장군 판관으로 부임, 노승으로 변신해있던 호랑이 대장 알아보고 호통….
-‘仁王’- 불법 수호하는 金剛神의 이름… 조선초까지 西山으로 불리다가, 세종때 조선왕조를 수호 뜻에서 인왕산(仁王山)으로 개칭…

속담…
-‘인왕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 없다’
-‘인왕산 차돌을 먹을 망정 사돈집 밥은 먹지 말랬다’

ㅇ유본예(1777~1842) ≪한경지략≫
“…신라 말 도선대사가 지었다는 ≪산수비기(山水秘記)≫; ‘국도를 정할 때… 만일 정(鄭)씨 성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들으면 5대가 지나지 않아 혁명이 일어나고, 200년 만에 큰 난리가 일어나 백성이 어육이 될 것’  5대 만에 세조의 계유정난이 발생하고, 200년 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ㅇ조선 중기의 문신·문인 차천로(車天輅)의 시화(詩話)·야담집-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
“…무학대사는 인왕산-주산, 북악과 남산- 좌청룡 · 우백호 주장”
정도전은 ‘옛부터 제왕은 남면(南面)하여 천하를 다스렸고, 동향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면서 반대, 무학대사의 주장 좌절.
무학대사 탄식, ‘200년후 다시 도읍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ㅇ명종 때 학자 남사고(南師古)
“인왕산 아래 사직골에 왕의 기운” 뒷날 선조가 사직골에서 태어나…
광해군 때 인왕산 아래 색문동에 왕의 기운 있다는 소문
왕위 불안… 인왕산 아래에 경덕궁(경희궁), 인경궁, 자수궁 건축…

실록을 검색해 본 학자에 따르면…
“…백악산(白岳山· 북악산) 68건, 인왕산 99건 등장… 당시 인왕산이 주산보다 더 화제가 된 것… 호랑이와 ‘풍수 논쟁’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