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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9

[그들은 어떻게?]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닦은 역사속 인물들

[그들은 어떻게?]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닦은 역사속 유명한 인물들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역사적으로 수많은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들에게 사색과 영감, 그리고 건강을 선물한 최고의 명상법이었습니다. 
걷기를 통해 영감을 얻고 건강을 지켰던 대표적인 인물들의 사례를 살펴봅니다. 

여러분은 오늘 얼마나 걸으셨나요? 
단순한 이동 수단처럼 보이는 걷기가, 사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과 예술가, 과학자들의 가장 소중한 의식이었다면 어떨까요. 
오늘은 시대를 넘어, 걷기로 세상을 바꾼 인물들의 이야기를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 BC 384–322, 그리스
인류 최초의 '걷는 철학자'는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일 것입니다. 그는 아테네 리케이온 학당의 나무 그늘진 산책로, 페리파토스를 걸으며 제자들에게 강의했습니다. 움직이면서 배우고, 걸으면서 토론하는 이 독특한 방식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사람들은 그의 학파를 아예 '걷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 불렀습니다. 이천 오백 년 전, 이미 누군가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은 앉아서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흘러간다는 사실을....

18세기 조선 정약용 1762–1836, 조선
같은 동양에도 걷기로 사색을 완성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의 거장, 다산 정약용입니다. 그는 18년간의 강진 유배 시절, 매일 이른 아침 주변 산과 들을 걸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걸으면서 백성의 삶을 살폈고, 걸으면서 목민심서의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그에게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책상에서 글을 쓰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생각의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유배라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이 그를 현실과 연결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18세기 유럽 장 자크 루소 1712–1778, 프랑스·스위스
계몽주의의 시대로 넘어오겠습니다. 장 자크 루소는 걷기에 관한 가장 유명한 책 한 권을 남겼습니다. 바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입니다. 루소는 이렇게 썼습니다. "걸을 때만 진정한 명상이 가능하다. 몸이 움직여야 비로소 정신도 움직인다."고요. 그는 파리 근교의 숲길을 혼자 수 킬로미터씩 걸으며 사회계약론의 핵심 사상을 구체화했습니다. 그에게 걷기는 사회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걸을 때만 명상을 할 수 있다. 몸이 움직여야 정신이 움직인다." 임마누엘 칸트 1724–1804, 프로이센
그리고 여기, 역사상 가장 규칙적으로 걸었던 인물이 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의 철학자였던 그는, 평생 단 하루도 빠짐없이 오후 3시 30분에 산책을 나섰습니다. 그 시간이 어찌나 정확했던지,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며 시계를 고쳐 맞출 정도였다고 합니다.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난 적 없이, 그 좁은 동네 산책로를 수천 번 걸으며 순수이성비판을 완성한 사람. 위대한 사색에 광대한 여행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 인물입니다.

18~19세기 루트비히 판 베토벤 1770–1827, 오스트리아
음악의 거장 베토벤은 매일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어김없이 빈 근교의 숲길로 사라졌습니다. 그의 손에는 항상 오선지와 연필이 들려 있었습니다. 숲을 걷다가 문득 악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음표를 적었습니다. 때로는 걸음을 멈추지도 않고 걸으면서 악보를 그렸습니다. 청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도 그 습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귀로 들을 수 없었지만, 발로 땅을 밟는 진동이 그에게 박자를 가르쳐 주었던 걸까요. 제9번 교향곡 '합창'은 그 침묵의 산책에서 피어난 소리였습니다.

소렌 키르케고르 1813–1855, 덴마크
실존주의의 아버지 키르케고르는 코펜하겐의 거리를 오래 걷기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
그는 우울과 불안이 밀려올 때마다 코펜하겐 골목골목을 걸었습니다. 걷는 동안 어떤 낯선 사람과도 말을 나누었고, 그 대화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걷기는 그에게 철학의 방법론인 동시에,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찰스 다윈 1809–1882, 영국
영국 켄트주 다운 하우스. 찰스 다윈은 이 집 정원에 특별한 산책로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은 샌드워크(Sandwalk), '생각의 길'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이 길을 정해진 횟수만큼 돌았습니다. 특히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입구에 돌멩이를 쌓아두고, 한 바퀴 돌 때마다 하나씩 치웠습니다. 돌멩이가 다 없어지면 그 문제를 충분히 생각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쌓인 생각들이 모여, 1859년 종의 기원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찰스 디킨스 1812–1870,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걷기에 관해서라면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그는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을 때, 런던 시내를 밤새도록 걸었습니다. 하루에 12마일, 약 20킬로미터를 넘기는 날도 많았습니다. 새벽 빈민가의 좁은 골목, 템스강 변의 어두운 안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 그 모든 것이 올리버 트위스트가 되고, 위대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런던의 밤거리는 그의 소설 속 배경이자, 그의 상상력을 기른 도서관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 독일
걷기에 대해 가장 선명한 말을 남긴 철학자를 꼽는다면, 단연 니체입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스위스 알프스의 질스-마리아 마을을 사랑했습니다. 해발 1800미터의 산길을 매일 서너 시간씩 걸으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사상들을 다듬었습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서는 결코 위대한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몸이 리듬을 타야 정신도 리듬을 탄다고, 근육이 움직여야 비로소 사유도 흘러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체의 철학은 알프스의 바람 속에서 걸음마다 빚어진 것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879–1955, 독일·미국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재직하던 시절, 매일 오후 연구실에서 집까지 2킬로미터 가량을 걸어서 귀가했습니다.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걷는 동안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입술은 가끔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요. 쉬고 그 걸음들이 특수 상대성이론을 수정하고, 광전효과의 증명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만들어진 수준의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걷기는 그 수준을 바꿔주는 도구였습니다.

스티브 잡스 1955–2011, 미국
마지막으로, 현대의 이야기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워킹 미팅, 즉 '걸으면서 하는 회의'로 유명했습니다. 쉬고 애플 쿠퍼티노 캠퍼스 주변 블록을 걸으며 핵심 결정을 내렸고, 중요한 협상 상대를 만날 때도 카페 대신 산책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앉아서 하는 회의에서는 사람들이 방어적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함께 걸으면 시선이 같은 방향을 향하게 되고, 그러면 대화가 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워킹 미팅 문화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가 현대의 IT 기업 캠퍼스에서 부활한 셈입니다.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닙니다. 

뇌과학적으로도 이미 밝혀진 사실이 있습니다. 걷기는 뇌의 해마 영역을 자극해 창의력과 기억력을 높여줍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낮추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스티브 잡스까지, 수천 년에 걸쳐 위대한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아낸 것을 현대 과학이 뒤늦게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걷기는, 당신에게도 위대한 길이 될 수 있습니다.

2026-03-14

권력과 배우자: 보이지 않는 영향력

왜 어떤 지도자는 수많은 참모보다 단 한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할까요. 우리는 흔히 권력은 냉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인간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관계의 동물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특정 인물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미리 밝혀둡니다. 공개된 역사 사례와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권력과 배우자라는 보이지 않는 축을 분석해보려 합니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정보는 필터링되고, 비판은 줄어들고, 솔직한 조언은 사라집니다. 이를 정치심리학에서는 신뢰범위 축소현상이라고 부릅니다. 권력이 커질수록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원은 점점 작아집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원 안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우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옵니다. 왜 어떤 리더는 특히 배우자의 말을 더 잘 들을까요.

심리학에는 애착 이론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 유형은 성인이 되어서도 중요한 관계에서 반복됩니다. 안정 애착형은 다양한 사람을 신뢰하지만, 불안 애착이나 회피 애착 성향이 있는 경우 극소수에게만 깊게 의존합니다. 권력자가 후자에 가까울 경우, 배우자는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라 정서적 안전기지가 됩니다. 안전기지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돌아와 안정을 회복하는 심리적 공간입니다.

또 하나의 개념이 있습니다. 정체성 융합. 배우자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개인의 자아와 상대방이 심리적으로 겹쳐집니다. 이 상태에서는 배우자가 공격받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이 공격받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방어는 두 배로 강화됩니다. 정책 방어가 아니라 존재 방어가 됩니다.

여기에 권력이라는 변수가 더해집니다. 권력은 사람을 고립시킵니다. 고립은 인지 편향을 강화합니다. 확증 편향, 집단사고, 외집단 적대감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유일한 완전 신뢰 대상이 되면, 그 관계는 일종의 닻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닻이 안정이 될 수도 있지만 방향을 고정시킬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를 보면 유사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로널드 레이건과 낸시 레이건의 관계는 정서적 결속이 매우 강한 사례로 자주 분석됩니다. 리처드 닉슨은 극도의 고립 속에서 의심이 강화된 사례로 연구됩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역시 사적 관계와 공적 이미지가 정치 환경과 맞물렸던 사례로 거론됩니다. 이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를 보여줍니다. 공식 권력과 비공식 정서 관계는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배우자 말을 특히 잘 듣는 유형이 있습니다. 이건 경험적으로도 많이 관찰됩니다. 이런 유형은 대개 세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장기 경쟁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오랜 시험, 긴 조직 생활, 반복된 좌절을 거친 사람일수록 소수의 절대 신뢰 대상에 강하게 묶입니다. 둘째, 원칙 중심형 성향입니다. 세상을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사람은 관계 역시 이분법적으로 정리합니다. 내 편 아니면 아닌 사람. 셋째, 배신에 민감합니다. 과거 경험에서 신뢰가 무너진 기억이 있을수록, 신뢰 대상은 극도로 제한됩니다.

이 구조에서 배우자는 단순한 조언자가 아닙니다. 심리적 나침반이 됩니다. 이때 의사결정은 논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감정 조절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합리적 판단보다 정서적 안정 회복을 우선합니다. 즉, 배우자의 말이 정책적 전문성 때문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강한 내부 결속은 위기 상황에서 리더를 흔들리지 않게 만듭니다. 그러나 동시에 외부 비판을 적대적 공격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을 방어적 귀인 편향이라고 합니다. 모든 비판을 악의로 해석하는 경향입니다.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국가의 최고 책임자이고, 배우자가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면, 당신의 판단은 완전히 냉정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정책 비판과 개인 공격을 분리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둘이 뒤섞일까요.

권력자는 제도 위에 서 있지만, 동시에 인간입니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 합니다. 그리고 지키려는 본능은 때로는 강인함으로, 때로는 경직성으로 나타납니다.

중요한 건 누가 그렇다 아니다가 아닙니다. 이런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권력과 배우자라는 축은 공식 기록에 남지 않지만, 심리적 의사결정 환경에는 분명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실제 내면과 구체적 결정 과정은 외부에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구조를 분석할 뿐입니다.

마지막 질문을 남기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리더를 원합니까. 고립되어도 흔들리지 않는 리더입니까, 아니면 다양한 목소리를 흡수하는 리더입니까. 그리고 그 리더의 가장 가까운 사람은 그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은 누구의 말을 가장 많이 들을까요. 수십 명의 참모일까요. 수천만 명의 국민일까요. 아니면 단 한 사람일까요.

왜 어떤 지도자는 배우자가 공격받는 순간 더 강경해질까요. 왜 어떤 리더는 점점 고립되어 가면서도 물러서지 않을까요.

이건 정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 심리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정 인물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가지 구조를 해부합니다. 권력과 배우자. 공식 기록에는 남지 않지만 실제 의사결정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축.

그리고 아마 이 영상을 보고 나면, 뉴스를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질 겁니다.

"엄청난 재물을 스스로 사양한 위대한 은둔" - 주역 15괘 지산겸(地山謙)

 HowNext [운명의 갈림길] "엄청난 재물을 스스로 사양한 위대한 은둔" - 주역 15괘  지산겸(地山謙)

주역 64괘 중 단 하나의 괘. 여섯 효(爻) 모두가 길(吉)하다고 기록된 유일무이한 괘가 있습니다. 바로 15번째, **지산겸(地山謙)**입니다.

직전의 14번째 괘가 세상의 모든 것을 거머쥔 전성기 '화천대유(火天大有)'였다는 점을 떠올려 보십시오. 정오의 태양이 지고 나면 인간은 반드시 이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계속해서 타오르다 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낮추어 땅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1. 괘상의 리얼리티: 땅 밑에 파묻힌 에베레스트]
지산겸의 형상은 기묘합니다. 위에는 평평한 땅(坤)이 있고, 그 아래 거대한 산(艮)이 파묻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산은 땅 위에 솟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산겸은 그 거대한 바위덩어리와 수천 그루의 나무를 품은 산이 스스로를 깎아 평지 아래로 밀어 넣은 형국입니다.

이것은 비굴함이 아닙니다. **'에너지의 압축'**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평야 같지만, 지표면 바로 아래에는 에베레스트와 같은 거대한 질량이 꿈틀대고 있는 상태. 주역은 이 상태를 '겸손'이라 쓰고, **'가장 강력한 유종의 미'**라고 읽습니다.

[2. 운명의 갈림길: 장량, 3만 호의 봉토를 거절하다]
이 지산겸의 원리를 몸소 증명한 인물이 있습니다. 한나라 건국의 일등 공신, 장량입니다.

초한지의 전쟁이 끝나고 논공행상이 벌어지던 날, 유방은 장량에게 말했습니다.
"제나라 땅에서 가장 기름진 곳 3만 호를 직접 선택하라."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매년 수십억 원이 넘는 세수가 보장되는, 그야말로 '화천대유'의 정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량은 그 순간 '지산겸'의 갈림길을 선택합니다.

"저는 황상과 처음 만났던 저 초라한 유현(留縣) 땅이면 충분합니다. 그곳의 작은 후작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는 3만 호라는 거대한 산을 스스로 깎아 작은 흙더미로 만들었습니다. 토사구팽의 칼날이 번뜩이던 건국 초기, 한신이 목숨을 잃고 공신들이 숙청될 때 장량만이 유일하게 천수를 누리며 가문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그가 가진 '산'을 땅 밑으로 숨겼기 때문입니다.

[3. 살아남기 위한 전략: 칭물평시(稱物平施)]
지산겸괘가 요구하는 구체적인 액션은 **'칭물평시'**입니다.
저울로 물건의 무게를 달듯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여, 넘치는 곳을 덜어 부족한 곳에 보태라는 뜻입니다.

전성기에 100을 가졌다면, 그중 30을 스스로 덜어내어 그늘진 곳에 흐르게 하십시오. 이것은 도덕적인 선행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전략'**입니다. 가득 찬 그릇은 작은 흔들림에도 엎질러지지만, 스스로 비워낸 그릇은 어떤 풍파에도 뒤집히지 않습니다.

[마무리: 군자는 마지막이 아름답다]
지산겸은 말합니다. "군자유종(君子有終), 군자는 마지막이 아름답다."

시작은 누구나 화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이 칼날이 되어 돌아오지 않게 만드는 힘은 오직 '낮춤'에서 나옵니다.

지금 당신이 인생의 정점에 서 있습니까? 혹은 간절히 바랐던 성공의 순간을 맞이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산이 땅 위로 솟구치려 할 때 산사태가 일어나고, 산이 땅 아래로 몸을 숙일 때 그 땅은 비로소 단단한 대륙이 됩니다.

당신의 거대한 산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땅 위에 위태롭게 서 있습니까, 아니면 대지 아래 묵직하게 숨겨져 있습니까?

2026-03-12

부와 명예를 뒤로하고, 그녀가 선택한 22살 연상의 노감독

부와 명예를 뒤로하고, 그녀가 선택한 22살 연상의 노감독

2017년 2월, 독일 베를린.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한 동양인 여배우가 세계 3대 영화제의 은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백발이 성성한, 자신보다 스물두 살이나 많은 유부남 감독이 서 있었죠. 한국으로 돌아가면 '불륜'이라는 낙인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전 세계 외신 기자들 앞에서 당당히 선언했습니다. "나는 그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대체 무엇이, 한국 최고의 정점에 서 있던 그녀를 이토록 위험한 사랑으로 몰아넣었을까요?

그녀는 한때 대한민국 모든 패션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녀와 교제했던 남자들의 면면은 화려했고, 그녀와의 사랑을 뿌듯하게 추억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천만 배우 A는 그녀와 헤어진 후 "심장을 떼어낸 것 같다"며 2년 동안이나 방황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냉정했습니다. 자신이 만난 톱모델 B에게는 세련된 스타일을 입혀 '남신'으로 재탄생시켰고,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톱스타 C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공개 연인'의 타이틀을 남겼습니다.

당시 그녀의 몸값은 편당 수억 원대. 화장품, 의류, 가전제품까지 TV만 틀면 그녀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갈증은 돈이나 톱스타와의 연애로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녀는 데뷔 후 10년 가까이 '연기 못 하는 모델'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렸습니다. 발음은 뭉개졌고, 표정은 어색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모든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충무로의 잔혹한 미스터리물 <화차>를 선택합니다.

당시 그녀가 연기한 장면은 지금도 회자됩니다. 피칠갑이 된 채 바닥을 기며, 타인의 신분을 훔쳐 살아야 했던 여자의 처절한 절규. 관객들은 처음으로 그녀의 예쁜 얼굴이 아닌, 피부 아래 꿈틀거리는 야망과 광기를 목격했습니다. "아, 저 여자가 진짜 배우가 되었구나." 평단이 돌아선 순간이었습니다.

그녀가 거장 박찬욱 감독의 손을 잡고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을 때, 그녀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한 연예 관계자는 그녀가 그대로 활동했다면 향후 10년간 광고와 영화로 벌어들일 수익이 최소 1,000억 원 이상이었을 거라 추산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유혹을 비웃듯, 돌연 홍대 인근의 작은 카페에서 60대 노감독과 밀회를 시작합니다. 감독은 이미 가정이 있는 상태였고, 사회적 비난은 가혹했습니다. 광고 위약금 청구서가 날아오고, 모든 브랜드가 그녀를 손절했습니다.

그녀는 도망치는 대신 그 감독의 전용 여배우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수십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상업 영화 대신, 제작비가 고작 몇천만 원에 불과한 감독의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그 고립된 세계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입니다. 한국 여배우로서는 최초의 쾌거였죠. 가장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순간에, 예술가로서 가장 순수한 정점에 도달한 이 지독한 역설. 그녀는 트로피를 쥐고 감독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오늘의 이 영광은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오늘날 그녀는 더 이상 TV 광고에 나오지 않습니다. 화려한 시상식에도 초대받지 못하죠.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노감독의 카메라 앞에서 가장 자유롭게 숨을 쉽니다.

누군가는 이를 '비난'했고, 누군가는 '예술적 승화'라고 부릅니다. 수천억의 부귀영화 대신 손가락질받는 사랑과 예술을 선택한 그녀. 여러분은 이 여배우의 선택을 '정교한 이기주의'라고 보시나요, 아니면 '지독한 진정성'이라고 보시나요?


우리는 왜 틀린 예측을 믿는가?— 확신은 왜 정확하지 않은가?

우리는 왜 틀린 예측을 믿는가?— 확신은 왜 정확하지 않은가?
우리는 속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
TV에 나오는 전문가, 베스트셀러 저자, 세계적 석학...
그들은 미래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한 심리학자의 20년 연구는, 이 믿음을 정면으로 부숩니다.
10여년전 출판된《슈퍼포캐스팅: 예측의 기술과 과학》(2015) (저자: Philip E. Tetlock, 공동저자 Dan Gardner)에서는 수만 건의 정치·경제 예측을 추적한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은, 단순한 통계적 기준선보다, 크게 낫지 않았습니다.
확신은 강했지만, 정확도는 평범했습니다.
심지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인물일수록, 예측력이 더 낮은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계속 그들을 믿을까요.
답은 불편합니다.
우리는 결과를 보고 나서, 기억을 고쳐 쓰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말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고.
이것이 사후 과잉 확신 편향입니다.
틀린 예측은 잊히고 맞은 장면만 남습니다.
확신은 능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확신과 정확도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테틀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 정보기관이 후원한 예측 토너먼트에서, 수만 명을 실험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를 능가하는, 집단을 발견합니다.
그는 그들을 슈퍼포캐스터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내부 정보를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습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태도였습니다.
이들은 확률로 말했습니다.
70퍼센트.
55퍼센트.
30퍼센트.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조용히 수정했습니다.
자존심 대신 업데이트를 선택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정적으로 말하는 고슴도치형 사고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여우형 사고가, 훨씬 정확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1798년 Thomas Robert Malthus는, 인구 증가가 식량 생산을 앞지른다고 예측했습니다.
논리는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기술 혁신과 농업 발전이 계산을 바꿨습니다.
1968년 Paul R. Ehrlich는, The Population Bomb에서 대규모 기근을 경고했습니다.
1972년 The Limits to Growth는, 자원 고갈을 예측했습니다.
그 예측들은 일부 경고로서 의미는 있었지만, 당시 단정적 시간표는 빗나갔습니다.
문제는 계산이 아니라 확신이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Yuval Noah Harari는, AI가 인간의 의미 체계를 바꿀 것이라 말합니다.
Elon Musk는 인류가 화성으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은 강렬합니다.
그러나 강렬함은 정확함과 다릅니다.
테틀록의 연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확신을 믿습니까.
아니면 확률을 계산합니까.
예측의 기술은 미래를 맞히는 기술이 아닙니다.
틀릴 준비를 하는 기술입니다.
확신하는 사람은 박수를 받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수정하는 사람이 더 오래 맞춥니다.
지금 우리는, 다시 거대한 예언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큰 목소리의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미래는, 끝까지 배우는 사람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단정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업데이트하고 있습니까.

2026-03-11

이혼과 실패를 딛고 마법의 세계를 창조한 그녀, J.K. 롤링

이혼과 실패를 딛고 마법의 세계를 창조한 그녀, J.K. 롤링
조앤 K. 롤링 (J.K. Rowling). 1965년생. 포르투갈에서의 짧은 결혼과 파편화된 삶.

우리는 그녀를 '마법사'라 부르지만, 1993년의 그녀는, '철저한 실패자'였습니다. 
포르투갈 기자와의 짧은 결혼 생활은, 남편의 가정 폭력으로 산산조각 났고, 그녀는 생후 4개월 된 딸을 안고, 도망치듯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자리도, 집도 없던 그녀에게 국가가 준 건 '임대 주택'과, '사회보장 보조금'뿐이었죠. 
"나는 내가 아는 가장 큰 실패자였다"는 그녀의 말은, 수사가 아닌 처절한 고백이었습니다.

[에든버러의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와 '니콜슨']
유모차를 밀고 카페로 향한 건 낭만이 아니었습니다. 
에든버러의 혹독한 추위를 피하기 위함이었고, 아기를 재우기 위해 하염없이 걷다가, 아기가 잠든 틈을 타, 카페 구석에서 펜을 든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보조금으로 산 저렴한 종이 뭉치 위에, 손글씨로 이야기를 써 내려갔습니다. 소설속 '디멘터(절망을 먹는 괴물)'의 공포는, 당시 그녀가 겪었던 임대 주택의 곰팡이와, 가난이 준 실제 우울증의, 투영이었습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왜 열광했나?]
1997년 세상에 나온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이 책이 히트한 원인은 단순히 마법 때문이 아닙니다.

현실 밀착형 판타지: 벽장 속에서 구박받는 소년 해리는 당시 소외된 아이들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어른들도 읽는 아동 문학: 선과 악의 모호함, 죽음과 상실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뤄 성인 독자층까지 흡수했습니다.

탄탄한 세계관: 라틴어와 신화를 기반으로 한 정교한 설정이 마니아층을 형성했습니다. 
12곳의 출판사가 거절한 이유는, "아이들에겐 너무 길고 복잡하다"는 편견 때문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복잡한 깊이'가, 성공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결론: 15억 달러의 가치보다 중요한 것]
단돈 250만 원의 계약금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현재 8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5억 부 이상 팔렸고, 그녀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자가 된 뒤에도, 억만장자 순위에서 탈락하기를 자처하며 수천억 원을 기부합니다. 가난의 냄새를 기억하는 그녀에게, 돈은 '사치'가 아니라, '타인의 절망을 닦아주는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아웃트로: 당신의 '벽장'은 어디입니까?]
해리 포터는, 좁은 계단 밑 벽장에서 시작해, 호그와트로 향했습니다. 조앤 롤링은, 보조금으로 연명하던 임대 주택에서 시작해, 세계의 중심에 섰습니다.
지금 당신이 갇혀 있는 그 좁은 벽장이, 어쩌면 당신만의 마법이 시작되는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어떻게] 실패를 딛고 일어섰는지, 오늘 조앤 롤링의 삶이 당신에게 답을 주었기를 바랍니다.

2026-03-10

서울 아파트 가격의 역설: 선진국 사례로 본 '수직 슬럼'의 공포

서울 아파트 가격의 역설: 선진국이 증명한 '수직 슬럼'의 공포

지금 서울 아파트 가격을 지탱하는 가장 큰 믿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불패 신화'입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의 시각에서 지금의 초고층 트렌드는 **'미래 가치를 현재로 지나치게 끌어다 쓴 외상 거래'**에 가깝습니다. 과연 30년 뒤, 50층 아파트의 주인들은 지금의 영광을 누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거대한 '수직의 덫'에 갇혀 있을까요?

부동산 가치는 결국 '땅'에서 나옵니다. 과거 5층 아파트가 30층이 될 때는 땅의 가치가 극대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30층, 40층인 아파트를 다시 짓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고층일수록 대지 지분은 쪼개져 한 뼘도 남지 않습니다. 건물이 낡아 '감가상각'이 끝나는 순간, 남는 것은 미미한 땅 지분뿐입니다. 건물은 소모품이고 땅만이 자산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원칙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닙니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타마 뉴타운'**을 보십시오. 한때 도쿄 최고의 베드타운이었던 이곳은 현재 '올드타운'을 넘어 일부 구역이 슬럼화되고 있습니다. 젊은 층은 떠나고 고령자만 남은 단지는 수선 적립금이 고갈되어 엘리베이터조차 교체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산업이 무너지고 세수가 줄어들자, 고층 주거지는 범죄와 방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인구 감소 시대에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화려한 고층 아파트가 자산이 아닌 '유지비 폭탄'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재건축은 결국 사업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초고층 재건축은 투입되는 건축비 대비 뽑아낼 수 있는 일반 분양 물량이 거의 없습니다. 모든 비용은 조합원의 몫입니다.
뉴욕이나 홍콩의 사례를 봐도, 도심지 주변의 고층 주택가가 재건축에 실패할 경우 급격히 슬럼화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분담금이 집값과 맞먹는 수준에 도달한다면, 자본은 냉정하게 이탈할 것입니다. 유지보수가 끊긴 초고층 건물은 **'수직의 빈민가'**라는 피할 수 없는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화려한 겉모습에 매료되어 '지속 가능한 자산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투기가 아니라 생존이자 경제입니다. 30년 뒤, 여러분의 자녀가 물려받을 것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일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부채의 늪'일지 지금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합니다.

[참고자료]
일본 타마 뉴타운(Tama New Town): 1970년대 도쿄의 인구 분산을 위해 건설된 최대 신도시이나, 현재 인구의 30% 이상이 고령층인 '한계 취락'화 진행 중. (KDB미래전략연구소 보고서 참고)

미국 디트로이트(Detroit): 산업 구조 변화와 인구 유출로 인해 도심 주거지가 급격히 슬럼화된 대표적 사례. 2013년 도시 파산 선고 이후 고층 빌딩과 주거지의 방치 문제가 심각했음.

서동기 박사의 분석: 용적률이 높은 초고층 아파트일수록 미래의 재건축 사업성이 낮아져, 장기적으로 가치가 하락하고 슬럼화될 위험이 크다는 논리적 근거 인용.

굴복하지 않는 유전자 - "한국은 어떻게 대체 불가능한 국가가 되었나"

굴복하지 않는 유전자 - "한국은 어떻게 대체 불가능한 국가가 되었나"
세상에는 두 부류의 나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힘 앞에 바로 무릎 꿇어, 실리를 챙기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도저히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에도,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는 나라도 있지요. 
150년 전, 서구 열강의 함대가 동아시아 앞바다에 나타났을 때, 세계는 조선이 바로 무너질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랐습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와 안보의 핵심 고리를 쥐고, '대체 불가능한 국가'로 우뚝 선 대한민국. 그 힘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역사적 고증: 굴복을 거부한 선택]
시간을 1860년대로 되돌려 봅니다. 
당시 청나라와 일본은, 서구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문을 열고, 조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습니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한 병인양요, 1871년 미국 아시아 함대가 들이닥친 신미양요.

객관적인 전력 차이는 처참했습니다. 신미양요 당시 조선군 전사자는 350여 명이었으나 미군은 단 3명에 불과했죠. 하지만 미군 기록에 남은 조선군의 모습은 경이로웠습니다. "조선군은 단 한 명의 탈영병도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창과 칼을 휘두르며 싸웠다." 승리했음에도, 미국과 프랑스는 조약 체결을 포기하고, 퇴각해야 했습니다. 굴복시키려 할수록 더 강하게 결집하는, 이 기묘한 저항 정신은, 훗날 대한민국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됩니다.

[현대적 대비: 위기를 대하는 자세]
이 유전자는 100년 뒤, 경제 위기 속에서 다시 한번 발현됩니다. 1997년 외환위기(IMF). 국제금융기구는 한국에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며, 5~7년의 회복 기간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집 안의 장롱을 열었습니다. 돌반지, 결혼반지, 할머니의 금비녀까지 들고나와 총 227톤, 당시 가치로 22억 달러에 달하는 금을 모았습니다.

이 모습은 전 세계 금융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 나라는 압박할수록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뭉친다." 결국 한국은, 역대 최단 기간인 2년 만에, IMF 체제를 졸업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압박(플라자 합의)에 순응하며, 장기 침체에 빠진 주변국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산업적 실체: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
오늘날 이 저항의 에너지는, '초격차 기술'이라는 실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막연한 국뽕이 아닌, 냉정한 수치가 이를 증명합니다.

반도체 부야를 보시죠.  AI 시대의 심장이라 불리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의 90% 이상을 한국이 점유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도 한국의 메모리가 없다면 거대한 고철에 불과합니다.

방위산업은 어떤가요? 2022년 폴란드가, 독일이나 미국의 무기 대신, 한국의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대량 구매한 사건은, 유럽 방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습니다. 전 세계가 팬데믹으로 멈췄을 때도, 한국은 약속된 납기를 지켜냈고, 계약서에도 없던 마스크와 방역 물품을 실어 보냈습니다.

에너지운송 볼까요... 영하 163도의 극저온을 견뎌야 하는 LNG 운반선 시장에서, 한국은 80% 이상의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목줄을, 한국의 조선소가 쥐고 있는 셈입니다.

[인생의 지혜: 패배는 있어도 굴복은 없다]
우리는 흔히 강대국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를 한탄하곤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강대국을 이긴 나라가 아니라, 그 어떤 강대국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150년 전 강화도 갯벌에서 구식 소총을 들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그 이름 없는 병사들의 정신이, 오늘날 반도체 클린룸과 거대한 조선소의 용접봉 끝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거대한 시련 그 자체가 아닙니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며,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굴복의 마음입니다.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당장의 패배는 일시적일 수 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는다면, 그 시련조차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죠.

우리 안에는 이 뜨거운 유전자가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를 누르는 삶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150년을 버텨온 그 저력으로 다시 한번 허리를 곧게 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이 포기하지 않는 한, 운명은 결코 우리를신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26-02-27

[운명의 갈림길- 14] "태양이 중천에 떴을 때, 우리는 어디를 보아야 하는가" [주역/화천대유(火天大有)]

 [HowStory 운명의 갈림길- 14]  "태양이 중천에 떴을 때, 우리는 어디를 보아야 하는가" [주역/화천대유(火天大有)]

인생의 길을 걷다 보면, 참 신기하게도, 모든 바람이 나를 향해 불어줄 때가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하는 일마다 결실을 맺고, 주변의 칭송이 이어지는, 그야말로 '나의 계절'이죠. 
주역은 이 찬란한 시기를, *화천대유(火天大有)*라고 부릅니다. 
하늘 위에 태양이 높이 떠서, 세상의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는 형상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가장 밝은 빛 아래 서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보이지 않던 그림자를 걱정하게 됩니다.

조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의 삶도, 늘 빛나기만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왕권이 안정되고 나라의 창고가 가득 찼던 화천대유의 시기, 그는 오히려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습니다.


당시 왕은 지독한 안질에 시달렸습니다. 책을 너무 많이 본 탓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나중에는 사람의 형체조차 구별하기 힘들 정도였죠. 
신하들은 눈 건강을 위해 집필을 멈추라 간청했지만, 그는 촛불 하나에 의지해 밤을 지새웠습니다.

"내 눈이 어두워져야 백성의 눈이 밝아질 수 있다." 
그 고통스러운 신념 하나로 28개의 글자를 깎아 나아갔습니다. 
붓끝이 보이지 않아 손가락 끝의 감각으로 종이를 더듬으며 한 자 한 자 새겨넣던 그 밤들. 
그가 자신의 눈력을 다 바쳐 훈민정음을 완성했을 때, 비로소 백성들의 어두운 삶 위로 지혜의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빛을 깎아 타인의 길을 밝힌 진정한 대유(大有)의 완성입니다.

주역 *화천대유(火天大有)*의 괘상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위에는 이글거리는 불(火)이, 아래에는 끝없는 하늘(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낮의 태양이 온 누리를 비추니, 감출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성공도, 나의 과오도, 세상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주역은 이 화려한 시절에 오히려 '악함을 막고 선함을 드높이라(遏惡揚善)'고 나직이 읊조립니다. 
해는 머리 위에 있을 때 가장 뜨겁지만, 그 순간부터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일깨워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 시기는 무언가를 더 채우는 때가 아니라, 내가 가진 빛이 너무 과해, 타인을 태우지는 않는지 살피는 때이기도 합니다.

큰 성취를 얻었을 때 우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은, '이 모든 것이 나의 힘'이라는 착각입니다. 
하지만, 세종이 그 높은 자리에서 스스로를 낮춰, 백성의 눈높이로 내려왔던 것처럼, 진정한 풍요는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그 수명이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재물, 지식, 혹은 영향력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온기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시샘의 불길이 되기도 합니다. 
태양이 만물을 차별 없이 비추듯, 내게 찾아온 행운의 빛을, 주변의 그늘진 곳으로 조금씩 나누어 보는 건 어떨까요. 
내 손 안의 것을 조금 덜어낼 때, 역설적으로 그 풍요는 더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며 빛나게 될 테니까요.

누구에게나 인생의 태양은 떠오릅니다. 
지금 그 눈부신 빛 아래 서 계신가요, 혹은 그 빛을 향해 묵묵히 걷고 계신가요?

화천대유의 시간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빛으로 무엇을 밝히고 싶은지 말이죠.
나만 돋보이는 눈부심보다, 함께 온기를 나누는 은은한 빛이 더 오래 기억되는 법입니다. 
오늘 나의 작은 나눔이 누군가의 어두운 밤을 밝히는 별빛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다음 시간에는 가장 높은 곳에서 다시 땅으로 내려와 겸손의 미학을 배우는 시간, 제15회 '지산겸(地山謙)' 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주역을 거쳐 지혜가 되는 곳, *HowNext [운명의 갈림길]*이었습니다, 구독~ 댓글~ 알림설정~ 좋아요~ 웅원 기다립니다

2026-02-22

주역13. 천화동인(天火同人) - "혼자가 아닌 우리, 운명을 바꾸는 만남의 기술"

주역13. 천화동인(天火同人) - "혼자가 아닌 우리, 운명을 바꾸는 만남의 기술"

세상과 싸우기는 참 힘든 일이지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도, 혼자만의 힘으로 거대한 운명의 벽을 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 아니라, 나와 뜻을 함께할 '사람'입니다. 
오늘은 흩어졌던 마음들이 들판에서 만나 거대한 불꽃을 피우는 지혜, 주역의 열세 번째 문 *천화동인(天火同人)*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삼국지에 보면, 가진 것이라곤 돗자리를 짜서 파는 가난과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큰 꿈밖에 없던 한 사내, 유비가 있습니다. 그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홀로 분투해보지만, 현실은 늘 비루했고 앞길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름 없는 들판에서 장비와 관우라는 두 사내를 만났을 때, 그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세 사내는 성씨도, 태어난 곳도 다르지만 '한날한시에 죽기를 맹세'하며 마음을 하나로 합칩니다. 이른바 '도원결의'입니다. 이들은 각자의 이익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뭉쳤고, 그 결속된 힘은 훗날 세상을 삼분하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혼자라면 그저 이름 없는 돗자리 장수로 끝났을 운명이, '동인(同人)'을 만나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의 길로 나아간 것입니다.

*천화동인(天火同人)*의 괘상을 보십시오. 위에는 하늘(天)이 있고, 아래에는 불(火)이 있습니다. 불은 성질상 자꾸 위로 타오르려 하고, 하늘 역시 위에 있으니 두 기운이 같은 방향을 향해 뜨겁게 만납니다. '동인(同人)'은 바로 '사람과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주역은 말합니다. '동인우야, 형. 이섭대천(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즉, "들판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니 형통하다. 큰 강을 건너는 것도 이롭다"는 뜻입니다. 좁은 문안에서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 아니라, 탁 트인 들판(광장)에서 공명정대하게 뜻을 합칠 때, 그 어떤 거친 파도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강력한 응원입니다.

천화동인의 핵심은 '공정함과 개방성'입니다. 내 편 네 편을 가르거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뭉치는 것은 진정한 동인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마음의 벽을 허물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막혔던 운을 뚫는 것은 혼자만의 독종 같은 노력이 아닙니다. 내 진심을 알아줄 사람을 찾고, 나 또한 누군가의 진심에 응답하는 것. 자존심과 고집을 내려놓고 들판으로 나아가 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 당신의 작은 불꽃은 세상을 밝히는 거대한 횃불이 됩니다.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얻었듯, 당신의 진심이 머무는 곳에 당신의 '운명적 동반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제 방 안에서 나와 가슴 속에 품은 그 뜨거운 불꽃을 주변 누군가와 공유하십시오.

천화동인의 시간은 혼자 걷던 길을 '우리'가 되어 걷기 시작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당신의 곁에 선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의 다음(Next)을 열어줄 열쇠입니다. 갈림길에서 두려움을 버리고 연대하십시오. 함께 걷는 길 위에 비로소 승리의 깃발이 보일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결실을 내 손안에 담는 풍요의 지혜, 제14회 '화천대유(火天大有)'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주역을 거쳐 지혜가 되는 곳, **HowNext [운명의 갈림길]**이었습니다.

2026-02-21

AI 포비아, 의사의 시대는 저무는가, 진화하는가?

의대 쏠림과 'AI Phobia'- 흰 가운의 시대는 저무는가, 진화하는가?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의대 블랙홀'에 빠져 있습니다. 
이과의 최상위권 인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방향으로만 달리고 있죠. 그들이 쫓는 것은 무엇일까요? 안정적인 고소득, 사회적 지위, 그리고 평생 보장된 면허의 힘, 또 무엇이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이 '성공의 공식'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 담장 밖 세상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기술적 단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연 10년 뒤, 20년 뒤에도 지금의 선택은 정답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의료 현장에는 이미 'AI 포비아'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영상의학과, 병리과, 내과 등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방을 내리는 영역은 이제 AI가 인간 의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합니다.

미국 유타주에서는 AI가 직접 처방전을 갱신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일론 머스크의 예언대로 로봇의 손길은 외과 의사의 정교함을 추월하려 합니다. 냉정하게 말해,  '지식을 외워서 문제를 풀고 처방하는' 기능적 의사의 시대는 그 효용성이 다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포가 아니라 데이터가 가리키는 상수(常數)입니다."

그렇다면 의대 지망은 바보 같은 선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사의 '본질'이 회복되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AI는 수백 개의 데이터를 내놓지만, 환자의 삶 전체를 놓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오직 인간 의사뿐입니다.

환자가 겪는 죽음의 공포, 가족의 슬픔, 그리고 삶의 질에 대한 철학적 고민은 알고리즘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휴먼 터치'의 가치는 희소해지고 그 단가는 높아질 것입니다. 미래의 의사는 지식 노동자가 아니라, 기술을 도구로 부리며 생명의 가치를 조율하는 '마스터 컨설턴트'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의사가 되려는 이들은 AI보다 정확한 처방전을 쓰기 위해 의대를 지망하기 보다는, AI가 하지 못하는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사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술은 더 차가워질 것이고, 인간의 온기는 더 귀해질 것입니다.

2026-02-18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두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두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땠는지, 소문과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을 구분해서 말씀드릴게요.
먼저 기본적인 사실부터 확인하고 갈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에 태어나서 1519년에 돌아가셨고요, 미켈란젤로는 1475년생으로 1564년까지 사셨습니다. 두 사람 나이 차이가 무려 23살이나 됐어요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들
이 내용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예술인 전기작가, 조르조 바사리의 기록과 당시 문헌들을 통해 확인된 것들이에요.
첫 번째, 두 사람은 정말 성향이 너무 달랐어요. 레오나르도는 우아하고 지적인 스타일의 화가였는데요, 회화가 조각보다 더 고귀한 예술이라고 믿었습니다. 반면에 미켈란젤로는 근육질의 역동적인 대리석 조각을 최고의 예술로 여겼죠. 바사리는 이 두 사람의 예술관이 너무 달라서 서로를 무시했다고 기록했어요.
두 번째, 1504년에 피렌체에서 정말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피렌체 정부가 이 두 거장에게 베키오 궁전의 같은 대회의실 벽면을 하나씩 맡겨서 전투 장면을 그리게 했거든요. 사실상 공개 대결을 시킨 거죠. 레오나르도는 앙기아리 전투를, 미켈란젤로는 카시나 전투를 그렸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두 사람의 경쟁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어요.
세 번째, 미켈란젤로가 실제로 길거리에서 레오나르도를 공개적으로 조롱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서 기마상을 완성하지 못한 것을 비꼬면서, 피렌체 거리에서 "청동으로 말 하나 만들지도 못하는 사람이 도망쳤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해요. 23살이나 어린 후배가 선배한테 이런 식으로 말한 거예요.
네 번째,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다비드상을 어디에 설치할지를 두고도 두 사람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다비드상을 구석에 배치해서 회화적으로 보이게 하자고 제안했고요, 미켈란젤로는 자기 조각이 조각답게 보이도록 정면 한가운데 배치되길 원했어요.
다섯 번째, 나이 차이와 관련된 미묘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23살이나 많은 선배였는데, 젊은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 같은 걸작을 완성하면서 파격적인 실력을 보여주자, 자신의 입지가 위협받는다고 느꼈던 거죠.

소문과 추정되는 내용들
이제 확실하게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을 말씀드릴게요.
첫 번째 소문, 미켈란젤로가 레오나르도의 외모와 패션 감각을 비웃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레오나르도는 화려한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고 다녔는데, 미켈란젤로는 작업복 차림으로 대리석 가루를 뒤집어쓴 채 다녔거든요. 미켈란젤로가 레오나르도를 허영심 많은 사람이라고 비웃었다는 얘기가 전해져요.
두 번째 소문, 레오나르도가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보고 "근육만 과장된 조잡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직접적인 기록은 없고, 두 사람의 예술관 차이를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는 추정이에요.
세 번째 소문, 미켈란젤로가 레오나르도를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실제로 레오나르도는 프로젝트를 많이 미완성으로 남겼거든요. 최후의 만찬도 실험적인 기법 때문에 완성 직후부터 손상되기 시작했고요.
네 번째 소문, 두 사람이 서로의 작품 공개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서로를 인정하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거죠.
두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
사실 이 두 천재가 사이가 안 좋았던 건, 단순히 성격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레오나르도는 과학자이자 발명가 기질이 강했습니다. 인체 해부학, 공학, 광학 등 모든 걸 탐구했고, 작품보다는 지식 탐구 자체를 즐겼어요. 그래서 작품을 많이 완성하지 못했죠.
반면 미켈란젤로는 순수 예술가였습니다. 조각과 회화에 모든 걸 쏟아부었고, 작품 완성도에 집착했어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처럼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도 혼자서 끝까지 완성해냈죠.
성격도 정반대였어요. 레오나르도는 사교적이고 우아했지만, 미켈란젤로는 괴팍하고 고독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귀족들과 어울리며 음악도 연주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작업실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역사가 남긴 교훈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천재의 경쟁 덕분에 우리는 더 위대한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서로를 의식하면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으니까요.
레오나르도는 1519년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고, 미켈란젤로는 그보다 45년을 더 살면서 89세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두 사람은 생전에 화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는 두 사람 모두를 르네상스의 위대한 거장으로 기억하고 있죠.

2026-02-17

유리천장을 깨뜨린 45세의 반란... 단돈 5천불로 창업한 메리케이, 그녀는 어떻게?

메리 케이 애쉬 (1918~2001)
45세에 사표 던지고 단돈 5천불로 창업한 메리케이, 그녀는 어떻게?

여러분, 25년 동안 청춘을 다 바친 회사에서 나보다 경력도 짧은 남자 후배가 내 상사로 승진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1963년, 한 여성이 이 불합리한 현실 앞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은퇴 자금 5,000달러를 털어 '여성들이 정당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하죠. 핑크색 신화의 주인공, 메리 케이 애쉬입니다.


세 아이를 홀로 키우며 방문 판매원으로 잔뼈가 굵었던 그녀. 실적은 늘 1등이었지만, 승진의 기회는 늘 남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여자는 안 돼"라는 편견에 맞서기보다, 그녀는 아예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로 합니다. 45세, 남들은 은퇴를 고민할 나이에 그녀는 텍사스 달라스의 작은 사무실에서 화장품 판매를 시작합니다.

(고증: <사람을 세우는 경영>)] 그녀의 경영 철학은 단순하지만 강력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인 **'골든 룰(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을 기업의 제1원칙으로 삼았습니다.

"회사는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 존재한다."

그녀는 영업 사원들에게 실적을 닦달하는 대신, 그들의 삶을 응원했습니다. "가족이 먼저, 그다음이 직업"이라는 그녀의 말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하던 수많은 여성에게 구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성공한 여성들에게 보석이나 돈 대신 '핑크색 캐딜락'을 포상으로 주었습니다. "여자가 성공하면 저런 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시각적으로 증명한 것이죠. 겨우 9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현재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여성이 일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45세의 나이에 단돈 600만 원으로 시작해 세상을 바꾼 그녀. 메리 케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가 당신에게 안 된다고 말합니까? 당신 안에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거인이 살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핑크색 캐딜락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2026-02-15

달과 태양을 함께 쓴 문명 – 24절기의 철학

달과 태양을 함께 쓴 문명 – 24절기의 철학

설날 명절입니다.
우리는 달을 보며 새해를 맞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설은 음력인데, 계절을 알려주는 24절기는 태양 기준입니다.
달과 태양을 동시에 씁니다.

이 음력 달력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정확히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음력과 24절기는 기원전 수천 년 전 고대 중국 농경 사회에서
천문 관측을 통해 점차 다듬어졌습니다.
그리고 한나라 시기에 국가 차원의 공식 역법으로 체계화됩니다.
특히 24절기는 태양이 1년 동안 하늘을 도는 길,
즉 황도를 15도씩 나눈 계산에서 나왔습니다.
신화가 아닙니다 데이터였습니다.
농사를 망치면 굶던 시대, 하늘을 읽는 일은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더 생깁니다.
왜 굳이 달과 태양을 함께 썼을까요?
하나만 선택하면 더 단순했을 텐데.
이 지점에서 동아시아적 사고방식이 드러납니다.
동아시아 철학의 핵심은 대립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대표적으로 주역은 세상을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흐름과 균형으로 봅니다.
음과 양, 달은 음, 태양은 양.
하지만 주역은 음이 사라져야 양이 사는 세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둘이 맞물릴 때 질서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서구의 사고가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면,
동아시아의 사고는 “둘은 어떻게 통하는가”를 묻습니다.
달은 날짜 세기에 편리했습니다.
눈으로 보면 되니까요.
하지만 계절은 틀렸습니다.
1년이 354일이라 매년 11일씩 밀렸습니다.
태양은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눈으로 날짜를 세기엔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은 양자택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달은 살리고, 태양을 얹었습니다.
이게 바로 태음태양력, 하이브리드 시스템입니다.
주역에는 이런 괘가 있습니다.
지천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는 모습입니다.
막히면 흉, 통하면 길.
달과 태양을 따로 고집했다면 막혔을 겁니다.
그런데 이 둘을 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건 철학이 아니라 문명적 선택이었습니다.
왜 이런 통합 사고가 동아시아에서 나왔을까요?
이 지역은 거대한 대륙 농경 문명이었습니다.
비가 오느냐 마느냐, 해가 언제 길어지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흔들렸습니다.
자연을 정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연과 싸우는 대신 자연의 흐름을 읽는 방향으로 사고가 발달했습니다.
분리보다 조화, 대립보다 균형.
24절기는 바로 그 사고의 산물입니다.
입춘, 경칩, 춘분… 이 이름들은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지금은 어떤 기운이 흐르는가”를 말해 줍니다.
이건 시간의 철학입니다.
시간을 숫자로만 보지 않고 기운의 변화로 읽어낸 겁니다.
설날은 달이 새로 시작되는 날입니다.
하지만 그 달은 태양의 길 위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음과 양이 통하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번 설, 그냥 전통 행사로 넘기지 말고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 삶에서 나는 무엇을 억지로 하나만 고집하고 있는지.
혹시 달과 태양처럼 둘을 통하게 만들 수는 없는지.
24절기는 고대 농민의 달력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당신은 변화를 대립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흐름으로 보십니까?”
달과 태양을 함께 쓴 문명.
그 지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 윈스턴 처칠은 전쟁을 이기고도 버려졌는가 — 리더의 유통기한은 언제 끝나는가

왜 윈스턴 처칠은 전쟁을 이기고도 버려졌는가? - 리더의 유통기한?
1945년 7월.
히틀러는 죽었습니다.
독일은 항복했습니다.
유럽은 해방됐습니다.
영국은 승리했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남자,
윈스턴 처칠.
그는 전쟁을 이긴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3주 뒤.
그는 국민에게 버려집니다.
선거 패배.
전쟁을 이긴 지도자가
왜 평화에서는 선택받지 못했을까요?
영웅은 왜 오래가지 못할까요?


1부 — 가장 위험했던 순간
1940년.
프랑스는 무너졌고,
독일군은 유럽을 장악했습니다.
영국은 홀로 남았습니다.
의회 안에서는
히틀러와 협상하자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때 등장한 사람이 처칠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해변에서도 싸울 것이다.”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그는 희망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통을 예고했습니다.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사람들은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선택했습니다.
위기에는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부 — 전쟁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런던은 폭격당했습니다.
도시는 불타고,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그는 폐허 속을 걸었습니다.
그 장면은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도자는 때로 정책보다
존재 자체로 기능합니다.
처칠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고집 세고,
독선적이고,
감정 기복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환경은
그의 결함을 무기로 바꿨습니다.
전쟁은
강한 언어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언어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3부 — 그런데 전쟁이 끝났다
1945년.
사람들은 지쳤습니다.
집은 무너졌고,
경제는 파탄 직전이었고,
식량 배급은 계속됐습니다.
사람들은 묻기 시작합니다.
“이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더 이상
“싸우자”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연설이 아니라 일자리였고,
결기가 아니라 복지였습니다.
처칠은 전쟁의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평화의 설계자는 아니었습니다.
4부 — 패배의 순간
1945년 총선.
대부분은 그가 이길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노동당이 압승합니다.
복지국가를 약속한 정당이 선택됩니다.
영웅은 패배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옵니다.
국민은 배신했을까요?
아니면
냉정했을까요?
5부 — 리더의 유통기한
리더는 절대적 존재가 아닙니다.
리더는
“시대가 필요로 할 때만” 강합니다.
위기에는 결단형 리더가 필요합니다.
평화에는 조율형 리더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많은 리더가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카리스마는 강력합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습니다.
처칠은 실패했을까요?
아니요.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는 타이밍을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시대가 그를 정리했습니다.
6부 — 오늘의 우리
이 이야기는
영국 정치 이야기가 아닙니다.
회사에서도 반복됩니다.
창업 초기에 필요한 CEO와
안정기에 필요한 CEO는 다릅니다.
조직에서도 반복됩니다.
위기를 돌파한 팀장이
평화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심지어 유튜브 채널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에는 강한 메시지가 통하지만
성장 단계에서는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 시대에 맞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이미 끝난 방식으로
버티고 있습니까?
엔딩 — 가장 강하게
영웅은
패배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가 끝났기 때문에 사라집니다.
진짜 리더십은
승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물러나는 타이밍을 아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이긴 처칠은
선거에서 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남습니다.
우리는
언제 싸워야 하고,
언제 내려와야 할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 위에 서 있습니까?

2026-02-14

프리다 칼로-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방법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방법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아프지 않기 위해 애쓰고, 상처를 잊기 위해 다른 것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여기, 고통을 피해 가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이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
그녀는 위대한 화가이기 전에, 평생 아픈 몸을 끌고 살아야 했던 한 인간이었습니다.

프리다는 열여덟 살에, 인생을 바꿔놓는 사고를 당합니다.
버스와 전차의 충돌.
척추가 부러지고, 골반이 산산조각 나고, 다리는 심각하게 손상됩니다.
이 사고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평생 30번이 넘는 수술, 끊이지 않는 통증,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
그녀의 삶은, 회복을 전제로 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프리다는 침대에 누운 채로 살기 시작합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 천장에 거울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대상은 나 자신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기 얼굴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프리다의 첫 번째 중요한 작품은, 이렇게 해서 **〈자화상〉**들입니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웃지도 않습니다.
정면을 응시하는 얼굴,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 눈.
이 자화상들은,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지금의 나다.”

프리다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숨기지도 않습니다.
대표작 **〈부서진 기둥〉**을 보면, 그녀의 몸은 갈라져 있고, 척추 대신 금이 간 기둥이 서 있습니다.
온몸에 박힌 못들, 피부를 찢는 고통.
그녀는 울고 있지 않습니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상태 그대로 서 있습니다.
이 그림은, ‘아픔을 표현한 그림’이 아니라, 
아픔을 회피하지 않은 기록입니다.

프리다의 색채는 강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이렇게 화려한 색을 썼을까?”
답은 단순합니다.
삶이 어두웠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놓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는 멕시코의 전통 의상을 입고, 원색을 쓰고, 민속적 상징을 끌어옵니다.
대표작 〈두 명의 프리다〉.
하얀 옷을 입은 프리다와, 전통 의상을 입은 프리다.
두 심장은 밖으로 드러나 있고, 서로 혈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상처 입은 자아, 하나는 버텨온 자아.
이 그림은, 분열이 아니라, 공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프리다는, 자기 자신을 꾸미지 않습니다.
장애를 감추지 않고, 연약함을 삭제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설명해야 할 존재’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냥 보여줍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는. 열정적이었고, 잔인했고, 끊임없이 그녀를 흔들었습니다.

프리다는 말합니다.

“나는 두 번의 사고를 당했다.
하나는 버스 사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였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 때문에 자신을 잃지 않습니다.

사랑의 고통조차, 자기 언어로 바꿉니다.

후기의 작품 〈희망의 나무, 굳건히 서라〉.

낮의 프리다는 침대에 누워 있고, 밤의 프리다는 의자에 앉아, 당당히 서 있습니다.

손에는 문장이 적힌 깃발.

“Tree of Hope, Stand Firm.”

희망은 기도문이 아니라, 자세라는 것을, 이 그림은 말하고 있습니다.

프리다는, 고통을 극복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고, 삶은 쉬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한 일은 단 하나입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것을 그림으로 만들었고, 색으로 남겼고, 형태로 붙잡았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위인이 아닙니다.

완벽한 인간도 아닙니다.

다만, 자기 삶을 대신 살아달라고, 요청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언젠가 괜찮아지면 시작하겠다.”

프리다는 반대로 살았습니다.

“괜찮지 않은 채로도, 나는 시작할 수 있다.”

그녀의 그림은 묻습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프리다 칼로는,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끝까지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2026-02-12

대한민국, 시스템이 만든 기적의 사회

대한민국, 시스템이 만든 기적의 사회

해외 각 분야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갸우뜽하는 점들이 있습니다.
'표준에서 벗어난 국가'라는 건데요. (Anomalous case, Exception to the rule, Unique outlier - 최저 출산율, 최고 교육열 등)

특히 대표적으로 다섯가지 특징이 손꼽힙니다.


우선,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1.0명 미만을 기록하며, 2023년 0.72명에 이어 최근까지도 세계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앤 윌리엄스 교수가 이 수치를 보고 "대한민국은 완전히 망했네요(Korea is so screwed)"라고 반응한 일화는 유명하며, 인류학적으로 '국가 소멸'을 시험하는 첫 번째 사례로 거론됩니다. 

둘째로 "최고의 학력, 하지만 낮은 행복도"가 의미하는 교육의 역설입니다. 한국은 25~34세 청년층의 고등교육(대학) 이수율이 71%로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평균 48%). 

전문가들은 이를 '교육 열풍(Education Fever)'이라는 고유 용어로 설명합니다. 자녀 한 명에게 가용 자원을 모두 쏟아붓는 '질적 투자'가 결국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는 '지위 외부성(Status Externality)'의 전형적인 사례로 분석합니다. 

셋째로, 출산 양상의 특이점입니다. 전반적인 출산율은 급락하는데, 반대로 다둥이(쌍둥이 이상) 출산 비중은 급격히 늘어나는 기현상이 관찰됩니다. 늦춰진 결혼으로 인한 난임 시술 증가와 더불어, "한 번에 낳아 기르자"는 한국 특유의 '편의 중심적 출산(Convenience-oriented childbirth)' 경향이 반영된 독특한 트렌드로 보고됩니다. 

넷째로, "가장 연결되어 있지만 가장 외로운", 사회적 고립의 역설입니다.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하지만, 정작 어려울 때 기댈 사람이 있는지 묻는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 지표는 OECD 최하위권입니다. 심리적 고립감과 사회적 파편화가 극심한 '외로운 선진국'의 모델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다섯번째로, 경제적 불균형입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인구 감소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1년(52주) 연속 상승하는 등, "부동산 불패와 가계 부채 증가" 현상은 시장 원리로만 설명하기 힘든 이례적 사례로 꼽힙니다. 

좀 특이한 나라라는 거죠. 근데 재밌는 건요, 그들이 말하는 그 '이상함'이 사실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의 집약체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는 타국과 비교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나는, 한국만의 특징적인 구조들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1. 초고속 통합 인프라: 기다림이 사라진 사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행정 처리나 물류는 뭐예요? 기다림의 영역이죠.

우편물 하나 받으려면 일주일, 서류 발급받으려면 며칠씩 걸리는 게 당연한 곳들이 많아요.

그런데 한국은요, 세계 최고 수준의 IT망을 기반으로 한 전자정부 시스템이 주민센터의 신속한 발급을 넘어서, 아예 행정 절차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어버렸어요.

여기에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물류와 결합하면서, 전 국토를 '당일 배송권'으로 묶어버렸습니다.

쿠팡 로켓배송이 새벽에 도착하는 게 신기한 게 아니라, 그게 가능한 시스템 자체가 기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교통카드 하나로 전국의 대중교통이 연결되고, 앱 하나로 납세부터 의료 행정까지 처리되는 나라.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나라 찾기 힘듭니다.

카카오톡으로 택시 부르고, 네이버로 병원 예약하고, 토스로 공과금 내는 게 당연해 보이죠? 근데 이게 다른 나라에선 절대 당연하지 않습니다.

차 없이도 24시간 생활이 가능한 대중교통 환승 시스템과 상업 편의성. 이게 바로 국가 전체의 회전율을 극대화하는 거대한 동력입니다.

2. 안전과 청결: 자율적 질서가 만든 도시

서울, 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밀집해 있는 거대 도시죠.

근데 이 좁은 땅에서 쓰레기 문제나 치안이 이 정도로 통제된다는 게... 사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이례적인 현상이에요.

밤늦게 돌아다녀도 안전한, 촘촘한 치안망과 CCTV 인프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범죄율을 가진 나라 중 하나가 됐습니다.

밤 12시에 혼자 골목길 걸어도 별로 무섭지 않은 나라가 세계에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거리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엄격한 분리수거 제도. 새벽부터 움직이는 공공 인프라와 성숙한 시민 의식이 맞물려서, '공공의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이 시스템.

이건 국가가 강요해서 된 게 아니에요. 공동체의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정교한 질서입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건강보험 시스템이에요.

저렴한 비용으로 누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 이건요, 국민의 생존권을 국가가 시스템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시스템이 시민의 자부심을 끌어올리고, 시민이 다시 시스템을 지탱하는 선순환 구조죠.

3. 인적 자본의 압축 성장: 교육에서 문화까지

밤 10시가 넘어도 학원가 불이 켜져 있는 풍경. 외국인들 눈에는 기이하게 보일 수 있어요.

"왜 저렇게까지 공부해?"

근데 이건요, 자원 하나 없는 대한민국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인적 자본의 고밀도 투자' 전략의 결과물이에요.

세계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 이수율. 이건 대한민국 성장의 유일한 원천인 '사람'에 대한 투자 결과였습니다.

로봇 같다는 평가 뒤에는, 국가를 지탱해 온 치열한 생존 문법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치열한 교육 경쟁이 낳은 우수한 인적 자원이, 이제는 기술을 넘어서 K-컬처라는 세계적 영향력으로 확장되고 있어요.

BTS, 블랙핑크, 봉준호, 윤여정, 기생충, 오징어게임... 이게 다 우연이 아니라는 겁니다.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가 동시에 작동하는, 유일무이한 국가 모델이죠.

4. 위기 대응의 DNA: 빠른 사회적 합의와 실행력

자, 여기서 제가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게 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억하시죠?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을 때, 한국은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K-방역이라고 불렸던 그 시스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자 며칠 만에 공적 마스크 시스템을 구축하고, 앱으로 재고 확인하고, 요일별 출생연도로 구매 통제하던 거 기억나세요?

드라이브스루 검사, QR코드 출입 시스템, 실시간 동선 공개...

이게 가능했던 건 단순히 기술력 때문이 아니에요.

사회 전체가 빠르게 합의하고, 정부-기업-시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실행력. 그리고 개인정보 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적 의사결정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죠.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IMF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도, 이 시스템은 멈추지 않았어요.

위기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강한 복원력. 그게 어디서 나오는가. 결국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5. 24시간 멈추지 않는 도시: 편의성의 극대화

이건 외국인들이 한국 와서 가장 놀라는 부분 중 하나예요.

새벽 3시에 배고프면? 편의점 가서 따뜻한 밥 사 먹을 수 있죠.

새벽 4시에 급하게 필요한 물건 있으면? 쿠팡에서 주문하면 몇 시간 뒤 문 앞에 도착해 있어요.

밤 11시에 약 필요하면? 24시간 약국 앱으로 검색해서 찾아가면 됩니다.

이게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서는 게 뭐냐면요,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낮에 일하는 직장인도, 밤에 일하는 프리랜서도, 누구나 필요할 때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구조.

편의점 밀도, 배달 인프라, 심야 대중교통... 이 모든 게 맞물려서 '멈추지 않는 도시'를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이게 노동 착취나 과로 문화와 연결된다는 비판도 있어요. 그건 우리가 반드시 개선해야 할 부분이죠.

하지만 시스템 자체의 효율성과 가능성은 인정해야 합니다.

6. 디지털 네이티브 국가: 세대를 넘어선 디지털 전환

마지막으로 이 부분을 빼놓을 수 없어요.

한국은 젊은 세대만 디지털에 능숙한 게 아니에요. 60대, 70대 어르신들도 스마트폰으로 뉴스 보고, 카톡하고, 유튜브 보시잖아요?

키오스크 주문이 익숙하고, QR코드 체크인이 자연스럽고, 모바일 뱅킹으로 송금하는 게 전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나라.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디지털 격차가 엄청난 사회 문제거든요.

노인 세대는 현금 써야 하고, 젊은 세대는 카드 쓰고... 이런 분절이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덜해요.

물론 여전히 디지털 소외 계층이 있고, 그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지만요.

전 국민이 디지털 전환에 동참하는 속도와 범위는, 한국이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Next는?

지하철의 정시 도착부터 병원 예약의 편리함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에요.

압축 성장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이 치열하게 합의한 '효율의 산물'입니다.

하지만요, 질문 하나 던져볼게요.

이 정교한 시스템이 인구 절벽이라는 위기 앞에서도 지속 가능할까요?

24시간 돌아가는 편의점을 누가 운영할 건가요?

새벽 배송을 누가 할 건가요?

고령화 사회에서 건강보험 시스템은 유지될 수 있을까요?

효율성을 극대화한 시스템이, 이제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과제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다음(Next)을 질문해야 할 차례입니다.

"기적은 설계되었고, 시스템은 진화해야 한다."

"효율에서 지속가능성으로, 속도에서 균형으로."

"그것이 한국 사회가 마주한 다음 과제입니다."

2026-02-07

디지털 시대 생존 교양 - "카톡방 명화&글 공유, 법적으로 안전하려면?"

[HowNext 생각교실] 카톡방 공유의 기술 – 글과 그림, 어디까지 괜찮을까?
"무심코 올린 그림 한 장이 소송으로?"

좋은 글과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 지인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 참 귀한 정성입니다. 하지만 앞서가는 사람들은 그 공유의 마음에 '책임'이라는 옷을 입힙니다. 
콘텐츠가 곧 자산이 되는 미래(Next) 사회에서, 타인의 노력을 존중하는 법은 우리 모두의 생존 교양입니다. 오늘은 카톡방 공유, 그 안전한 경계선을 짚어봅니다.

먼저 '글'입니다. 남의 글을 통째로 복사해 올리는 '펌' 행위는 저작권자의 복제권과 전송권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안전하게 나누고 싶다면 글 전체를 옮기기보다 핵심만 요약하거나, 가장 확실한 방법인 원문 링크를 공유하십시오. 
링크 공유는 저작권 문제에서 가장 자유로운 지혜입니다.

다음은 '그림'입니다. 고전 명화는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면 인류의 공동 자산이 되어 자유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도 현대 작가의 작품이나, 명화를 고화질로 새로 촬영한 사진에는 별도의 저작권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끼리 보는 방인데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이 위험의 시작입니다. 
방 인원이 많아지고 그 글과 그림이 다른 방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법적 책임은 현실이 됩니다. 
상습적이거나 영리 목적이 섞인다면 문제는 더욱 커집니다. 

정답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과거의 지혜와 오늘의 저작권을 동시에 존중하는 작은 습관. 출처를 명확히 밝히는 그 한 줄이 당신의 품격과 안전을 동시에 지켜줍니다. 남의 노력을 존중할 때, 비로소 나의 가치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내일의 나를 만드는 오늘의 통찰, HowNext 생각교실이었습니다.

2025-12-13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인생의 지혜와 진리들?

인류 역사 5천년을 관통하며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인생의 지혜와 진리들이 있다. 고대 철학자들부터 현대 심리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강조,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인간 삶의 본질적인 측면들을 찾아본다.

삶의 유한성과 죽음의 수용: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많은 문화권에서는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강조했다. 이는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판타 레이(Panta Rhei; 萬物流轉;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라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동양의 노자 철학이 강조하는 자연의 순환과 맥을 같이 하는 심오한 통찰이기도 하다. 변화야말로 유일한 상수인 것이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능력은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이다. 과거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되 새로운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 또한 현명한 삶의 방식이다. 

중용 (Moderation)과 균형의 미덕:
과유불급(過猶不及)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조된 지혜다. 음식, 일, 감정 등 모든 면에서 극단을 피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과 건강에 이롭습니다.

자기 성찰을 통한 지혜와 배움의 추구: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자신의 강점, 약점, 동기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현명한 삶을 위한 첫걸음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배우며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열망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움과 성찰은 중요한 가치로 여겨져 왔다.

공동체의 중요성: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가족, 친구, 지역사회와의 연결은 개인의 행복과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원칙은 거의 모든 종교 및 윤리 체계에서 발견된다. 상호 존중과 공감은 건강한 사회관계를 위한 변치 않는 토대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간은 혼자서는 온전히 살 수 없으며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 상호 의존과 협력은 인류 생존의 근본적인 원칙이다.

도덕과 윤리의 중요성:
칸트의 윤리학에서 강조하듯, 인간은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하며,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와 규범(윤리)을 지키는 것은 사회 질서 유지와 개인의 존엄성 실현에 중요하다.

인내와 회복탄력성:
인생에는 어려움과 고난이 없을 수 없으며, 이에 좌절하지 않고 인내하며 극복하는 능력은 시대를 초월한 중요한 미덕이다. 스토아 철학이나 불교의 가르침 등 여러 사상에서도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이에 대처하는 자세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감사와 만족: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마음가짐은 탐욕과 끊임없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불행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노래: 〈변하지 않는 지혜〉
<1절>
사람들은 늘 같은 질문을 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삶을 빛내는지

한번뿐인 삶 영원치 않기에
오늘 이 순간순간을
조금 더 깊이 안아본다
<후렴>
변치않는 하나는 모든게 변한다는  
그 진리처럼 흐르는 강물
우리도 함께 흘러가지만
사랑과 존중, 감사의 마음
오래된 지혜는 지금도
모두에게 길이 되네
<2절>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게
균형 위에 서 있을 때
마음은 비로소 숨을 쉰다
너 자신을 알라는 오래된 말처럼
배우고 묻고 돌아보며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후렴>
변치않는 하나는 모든게 변한다는  
그 진리처럼 흐르는 강물
우리도 함께 흘러가지만
진심 다하는 사람다운 약속 위에
천년을 건너온 지혜가
오늘을 붙잡아 준다
<브리지>
고난은 피할 수 없고
넘어짐은 삶의 일부
그래 다시 일어나
작은 것에 감사할 때
욕망은 조용해지고
지금 이대로도 좋아
<마지막 후렴 (합창)>
모든 것 변해도
함께 걷는 이 세상에
우린 혼자가 아니야
오랜 지혜는 노래되어 흐르고
인류가 남긴 답은
지금 여기, 우리의 삶

2025-12-09

익숙한 것에서 탈출하기

익숙한 것에서 탈출하기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찾는 지혜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찾는 지혜

ㅇ 익숙한 사물이나 풍경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 매일 걷는 길가의 나무, 하늘의 구름, 커피 한 잔의 향기 등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것들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ㅇ 매일의 루틴에 아주 작은 변화를 주세요. 평소와 다른 길로 출근하기, 새로운 메뉴 시도하기 등이 지루함을 깨는 데 도움이 됩니다.
ㅇ 문화센터나 동아리 모임에 적극 참여해봐요.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것이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것 배우기에 빠져보세요.
ㅇ 매일 잠들기 전, 오늘 감사했던 일 세 가지를 적어보세요.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는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해줍니다.
ㅇ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세요.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능숙해지는 것보다 배우는 과정 자체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ㅇ 동창 모임에도 나가고 매일 보는 가족이 아니라 속을 아는 다른 사람들과 조심스럽게 교류하기도 좋아요.


이런 걸 주제로 Gemini에게 노래 가사를 부탁해 봤어요.

새로운 시도였죠. 
ㅡ 일상의 보물찾기 ㅡ
(Verse 1) - 익숙한 것들의 재발견
매일 똑같은 아침 햇살 / 창문 밖 익숙한 거리 무심코 지나친 풍경들 / 오늘은 멈춰서 보네 길가의 나무 그 잎사귀 / 하늘의 구름 조각들 커피 한 잔의 깊은 향 / 처음처럼 느껴지는 걸 Oh-oh, 낯설지 않은 이 세상 속 /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

(Chorus) - 변화와 지혜
반복되는 하루에 마법을 / 아주 작은 변화를 더해봐 다른 길로 걸어보는 발걸음 / 새로운 메뉴의 기대감 지혜란 멀리 있지 않아 / 여기 지금 내 곁에 지루함을 깨뜨리는 용기 / 일상의 보물찾기 시작해

(Verse 2) - 배움과 감사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설렘 / 서툰 손짓도 좋아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를 / 즐기는 나의 모습이 밤이 깊어 잠들기 전에 / 노트에 적어보는 감사 사소한 세 가지의 기쁨 / 긍정 에너지로 가득 채워 Oh-oh,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 / 작은 행복으로 충분한 하루

(Chorus) - 변화와 지혜
반복되는 하루에 마법을 / 아주 작은 변화를 더해봐 다른 길로 걸어보는 발걸음 / 새로운 메뉴의 기대감 지혜란 멀리 있지 않아 / 여기 지금 내 곁에 지루함을 깨뜨리는 용기 / 일상의 보물찾기 시작해

(Bridge) - 교류와 즐거움
혼자만의 시간도 좋지만 / 문을 열고 나가봐 따뜻한 시선과 웃음을 / 다른 이들과 나누면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나 / 세상이 더 다채로워져

(Outro) - 마무리
매일이 새롭기를 기도해 / 매 순간 즐거움을 찾아 오늘도 멋진 하루였지 / 내일의 기쁨을 기다려 Oh-oh-oh, 지혜롭게 살아가 / (Fade out) 일상의 보물찾기

ChatGpt는 이렇게 만들었어요. 

이를 토대로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봤지요.
이러한 과정도..... 매일 늘어나는 조회수 지켜보는 것도..... 정말 새로운 재미였어요. 
<1절>
매일 걷던 그 길 위에
어제 못 본 나뭇잎이 흔들려
하늘 위로 천천히 흐르던
작은 구름도 오늘은 더 하얗네
손에 들린 따뜻한 커피 향
왠지 마음 깊은 곳을 깨우고
너무 익숙해 잊고 살던 것들
하나씩 다시 보이기 시작해
<후렴>
오늘을 처음처럼 바라본다
내 곁의 작은 것들 속에 새로움이 피어나
지루한 하루도 노래가 되고
평범한 순간도 선물이 된다
내 삶의 길 위에
작은 기적들이 반짝인다
<2절>
평소 걷던 길을 살짝 비켜
처음 보는 골목길로 들어서면
낯선 풍경이 조용히 말을 건네
“너의 하루를 새로 칠해 보라”고
어색한 취미 하나를 배우며
천천히 서툴러도 웃어보면
결과보다 과정이 더 아름답단 걸
조금씩 마음이 알아가네
<브리지>
오늘 고마웠던 일 세 가지
소리 내어 조용히 적어 보면
내가 잊고 지나쳤던 행복이
어느새 손끝에, 마음에 머문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면
내 하루는 더 넓어져만 가네
<후렴(마무리)>
오늘을 처음처럼 바라본다
내 곁의 작은 것들 속에 새로움이 피어나
지루한 하루도 노래가 되고
평범한 순간도 선물이 된다
내 삶의 길 위에
작은 기적들이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