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가슴 떨릴 때 하란다. 뒤로 미루다가 다리 떨릴 나이에는 하고 싶어도 안된다는 뜻이다. 이제 그 임계선 가까이 성큼성큼 다가가는 걸 부인할 수 없는 '연세'. 그래서인가? 올들어 코로나에서 해방되는 낌새를 놓칠세라 제주도, 울릉도, 네팔, 일본에 이어 5월엔 독일여행을 감행했다.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야간열차로 하노버(Hannover Hbf)에 도착하니 밤 11시. 하루 머물며
평소 관심있던 몇개만 훑었다. Marktkirche(Market Church Hannover), Altstadt, Altes Rathaus 등등... 주요 명소를 따라 걷기 좋게 도로에 붉은 안내선을 그어놓은 것이 퍽 도움이 되었다(사진).
그림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의 소재가 됐던 곳이기도 하다. 농장에서 많은 세월을 보냈지만 쓸모가 없어져 주인에게 버림받은 당나귀, 개, 고양이 그리고 닭 이야기다. 수탉은 시간을 잘 알리지 못해서, 암탉은 알을 잘 낳지 못해서 구박받았다던가? 브레멘 시청 옆에 이 동물 악대를 형상화한 동상이 서있다(사진).
철도 파업이 예고되어 불안한 마음으로 함부르크로 이동. 행사장 겸 공식 숙소로 정해진 유스호스텔에서 참석자들과 3박4일을 함께 하며 관광하고 밥 먹고 얘기 나누고... 여기서 사흘 밤을 난생 처음 이층 침대에서 잤다.
1960~70년대에 독일에 건너온 '한국 간호사'들이 저마다 간직한 스토리는 대한민국 도약의 역사와도 맥을 같이 한다. 경탄...! 존경...!
간호사로서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 병원 근무를 하며 겪은 산전수전은 누구에게나 기본.
그 경력을 기반으로 대체의학을 익혀 수많은 봉사활동으로 이름을 떨친 분, 모터 달린 연장까지 직접 다루며 건축 공사도 하며 부동산 전문가가 된 분, 서예 강사, 고전 무용과 삼바 춤 강사가 된 분, 이런 저런 사연이 겹쳐 결혼 세번 하신 분, 혼자 사는 옆집 할머니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다가 돌아가신 후 10억짜리 집과 강아지까지 통째로 상속받으신 분, 지역언론의 기자가 되고 작가가 되신 분... 저마다 소설책 한 권씩 그냥 채워질만한 엄청난 드라마가 이들을 휘감아 빛내고 있다.
이 건물은 1963년부터 2001년까지 NDR(NordDeutscher Rundfunk)방송국의 본사로 사용되기도 전에 '비틀즈(Beatles)'가 처음으로 라이브로 공연한 장소로 유명하다.
"Beat-Club"의 녹화를 위해 이 건물을 방문했다. 이 공연은 비틀즈의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들의 "Hamburg Period"의 상징적인 장소로 남았다.
햄버거(Hamburger)와는 어떤 관계일까? 이 도시 사람들의 소고기 패티를 빵에 끼워 먹는 음식문화에서 탄생했다는 설도 많이 유포됐었지만, 아무 관련 없
다는 것이 정설이다. 시내를 걷다보면 'Hamburger ~ ~"라 표기된 간판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건 먹는 햄버거 집이 아니다. 예컨대, 'Hamburger Abendblatt'는 함부르크의 일간지로, "Hamburger"는 함부르크 주민들을 뜻한다. 또한, 'Hamburger Dom'은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축제로, 'Dom'은 '대형 박람회'를 의미한다.
함부르크의 여러 운하(canal)를 통한 보트 여행 코스는 걸어서 맛볼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정원이나 사연이 있는 멋진 건물들을 끼고 지나가며 다양한 건축 양식과 경관을 한 눈에 보게 된다.
이번 행사를 주관했던 동문회장은 함부르크 출발 시간에 여유가 있는 친구들을 초대, 살고 있는 강변의 멋진 빌라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스위스에서 연하의 회계사 남편과 함께 온 젊은 시절 친구는 근사한 점심도 베풀었다.
카셀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현대미술작품을 5년마다 전시하는 도쿠멘타(Dokumenta)로도 유명하다. 동화작가 그림형제의 고향이기도 하다.
풀다강 줄기 헤센주 주립공원 칼사우에(Staatspark Karlsaue)와 꽃섬 지벤베르겐(Siebenbergen) 일대도 정감 가는 곳이다. 1710년 백조섬이 있는 대분지를 발굴하며 조성했다는데, 몇 개의 작은 인공 섬과 정원이 어우러져 있다. 수련 연못으로 둘러싸인 작은 산에 봄에는 수선화, 튤립, 히아신스, 진달래까지 3층으로 피어난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나뭇잎 색깔, 꽃, 물오리 등의 전망으로 독특한 경관을 누릴 수 있다. 관상 및 수많은 침엽수와 자생 야생 식물, 수련 및 난초가 결합되어 식물원 분위기다. 가까운 위치에 오랑제리(Orangerie) 궁전도 있다.
공원의 가장 높은 지점은 526m 높이의 Karlsberg 산. 거대한 헤라클레스(Hercules; 사진)상이 올려져 있는 이 주변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까마득히 높이 올려진 동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긴 언덕을 따라 흘러내리는 폭포와 물길(steinhöfer wasserfall; water display; 물을 이용한 정원 시설)는 17세기 후반부터 헤센-카셀(Hessen-Kassel)의 카를(Carl) 영주의 지시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150여년동안 계속 늘렸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상 뒤편에 있는 수조와 장치(水空裝置)를 이용한 복합 시스템으로, 거대한 바로크 양식의 워터시어터(물 극장), 동굴, 분수, 그리고 350m 길이의 폭포같은 물길(Cascade), 간헐천과 같이 50m 높이까지 솟아오르는 대분수(Grand Fountain)에 물을 공급한다. 절대주의 군주의 이상과 함께 바로크와 낭만주의 시대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트램 1번을 타고 공원 입구에 내린 다음 버스로 갈아 타고 정상으로 가면 편한데, 구글맵의 대중교통 안내 기능이 카셀에서는 작동이 안된데다가 미리 공부도 안하고 갑자기 찾아가 시간을 낭비했다.
귀국하기 전에 꼭 한번 들렀다 가라는 친구의 청을 받아 프랑크푸르트로 가려던 코스를 바꿔 레버쿠젠으로 향했다. 바이엘(Bayer) 본사 소재지로 유명한 곳. 독일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쾰른과 라인강을 경계로 마주보고 있다.
바이엘에서 20여년을 근무하며 레버쿠젠에 터를 이룬 친구 남편과 '운명'을 주제로 한참 얘기를 나눴다. 일자리가 많지 않던 한국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독일 광산에 들어와 간호사 근무하던 현재의 아내를 만나기까지의 스토리다. 모래가마니를 메고 운동장 한바퀴를 돌아보여야 하는 마지막 관문에서 친구 둘은 낙방했고 혼자 합격했단다. 힘을 써서 어깨 위로 올리려던 가마니가 움직이지 않아 낙방이구나 절망하던 순간, 있는 힘을 다해 오른쪽 무릎으로 밑을 쳐올려 가슴 위에서 두 팔로 껴안고 뛰었다고... 귀국이 몇 달남은 시점에 우연한 자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난 그는 용기를 내 프로포즈를 하고... 우여곡절 끝에 독일에서 취업을 해보라는 격려에 힘입어 바이엘에 입사, 결혼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독일인 사위는 검사, 며느리는 IT업종 회사원....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이 운명을 바꿨다고 회상했다. 나는 그 말씀을 정정해드렸다. 그보다 전에 오른쪽 무릎치기가 일찌감치 운명을 결정했다고...
작은 도시인데 지명이 낯익다 싶었더니... 1904년에 만들어진, 우리 축구의 두 거물 차범근 손홍민 선수가 소속됐던 레버쿠젠 홈구장을 만났다. 못하는 영어로, "나 한국에서 왔다. 안에 1분만 좀 들어가 보고싶다" 했더니 들여보내주고 사진까지 찍어 주는 젊은 직원... 차범근 손홍민 선수 덕분이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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