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6일, 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의 외딴 화산섬, 아나타한. 미군 초계함 한 대가 섬 해안을 지나던 그때, 빽빽한 열대 정글 속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한 여성이 뛰쳐나왔습니다. 그녀는 해진 옷을 걸친 채, 손에 쥔 흰 천을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히가 가즈코. 스물일곱 살의 일본 여성이었습니다. 미군 선원들이 그녀를 구조하기 위해 섬에 발을 디뎠을 때, 그들은 정글 속에서 기이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여성을 제외하고 섬에 남아있던 이들은 오직 거친 수염을 기른 일본인 남성들뿐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이 섬에 고립되었던 일본인은 총 33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조된 사람은 가즈코를 포함해 단 20명. 지난 6년 동안, 이 작은 무인도에서 무려 13명의 남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살아남은 남성들은 동료들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눈을 피하며 침묵했습니다. 문명이 완전히 차단된 섬, 그곳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우리는 오늘,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소유욕과 생존 본능이 빚어낸 잔혹한 기록을 들여다봅니다.
이야기는 전쟁의 포화가 한창이던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나타한섬은 가로 9킬로미터, 세로 3.7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화산섬이었습니다. 일본의 국책회사인 '남양흥발'은 이곳에 코코넛 농장을 조성했고, 당시 20대 초반이던 히가 가즈코는 남양흥발의 직원 주부쿠 쇼이치와 함께 이 섬의 관리인으로 머물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즈코의 실제 남편은 인근 섬으로 일을 보러 갔다가 전쟁이 격화되면서 소식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원주민 수십 명과 함께 살아가던 가즈코와 주부쿠는 서로를 의지하며 코코넛을 말리고, 야자수로 술을 빚으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1944년 6월, 그 평화는 무참히 깨어집니다. 미군의 공습으로 인해 인근 해역을 지나던 일본 해군의 수송선과 어선 3척이 격침당한 것입니다. 불타는 바다에서 헤엄쳐 살아남은 일본인 군인과 선원 31명이 아나타한섬의 해변으로 밀려들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혈기왕성한 20대와 30대의 젊은 남성들이었습니다. 얼마 후 섬의 원주민들은 미군에 의해 모두 철수되었고, 섬에는 오직 일본인 남성 32명, 그리고 유일한 여성인 히가 가즈코, 단 33명만이 남겨지게 됩니다. 1945년 8월,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지만, 외부와 통신이 완전히 두절된 이들은 전쟁이 끝났다는 미군의 방송을 아군의 기만전술이라 믿으며 복귀를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자발적인 고립이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1~2년 동안은 비교적 질서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들은 오두막을 짓고, 고구마를 경작하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밤이면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고향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식량 문제가 해결되자, 남성들의 시선은 점차 섬의 유일한 여성인 가즈코에게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32대 1이라는 극단적인 성비 속에서 서서히 질투와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섬의 원로 역할을 하던 남성이 중재에 나섰습니다. 그는 가즈코와 주부쿠를 정식으로 결혼시켜 부부임을 선언하게 함으로써 다른 남성들의 접근을 막으려 했습니다. 한동안 이 장치는 효과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1946년 8월, 섬의 질서를 뿌리째 흔들어버릴 치명적인 물건이 나타납니다.
섬 한쪽에 추락해 있던 미군 B-29 폭격기의 잔해를 수색하던 남성 두 명이 부서진 기체 속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합니다. 바로 미군용 콜트 권총 2자루와 70여 발의 실탄이었습니다. 녹슨 잔해 속에서 나온 이 철제 무기는 문명이 사라진 섬에서 곧 '절대적인 법'이자 '권력'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총을 손에 넣은 두 남자는 즉시 섬의 지배자로 군림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육체노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남성들을 부려 식량을 빼앗았고, 무엇보다 가즈코의 남편인 주부쿠를 협박해 가즈코를 자신들의 처소로 빼앗아 왔습니다. 권총 2자루가 30명이 넘는 남성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입니다.
그때부터 섬은 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을 가진 두 남자 사이에 균열이 생겼고, 그중 한 명이 의문의 '추락사'를 당합니다. 독점 권력을 쥐게 된 남은 한 명의 남자 역시, 얼마 후 가즈코와 함께 야자수 술을 마시던 중 심장마비로 급사했습니다. 부검도, 수사도 없는 섬에서 그것은 명백한 독살이었습니다.
권총은 주인을 바꿀 때마다 반드시 시체를 남겼습니다. 총을 차지한 자가 가즈코를 차지했고, 가즈코를 차지한 자는 밤마다 다른 남성들의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낫과 대나무 창이 밤의 어둠 속에서 번뜩였습니다. 어떤 이는 깊은 밤 잠을 자다가 목이 졸려 죽었고, 어떤 이는 절벽에서 밀어졌으며, 어떤 이는 가슴에 총구멍이 난 채 발견되었습니다. 1948년이 되었을 때, 처음 32명이었던 남성은 25명으로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극도의 공포와 의심이 섬을 지배하자, 살아남은 남성들은 임시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서로를 죽여 파멸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극의 원인이 '총'에 있다고 결론짓고, 권총 2자루를 바위에 묶어 깊은 바다 속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즈코를 처음의 남편이었던 주부쿠에게 돌려보내며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이미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의심과 악의는 무기 없이도 작동했습니다. 총이 사라지자 이제는 정글을 개간하던 낫과 대나무 창, 식물에서 추출한 독약이 새로운 살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권총이 사라진 이후에도 5명의 남성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1950년 초, 섬에는 단 20명의 남성만이 남았습니다.
자신 역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광기에 휩싸인 남성들은 또다시 비밀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장 잔혹하고 터무니없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모든 비극의 원인은 저 유일한 여자, 히가 가즈코 때문이다. 저 여자가 없어져야 우리 사이에 살인이 멈춘다."
그들은 이튿날 아침, 가즈코를 처형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무리 중 한 남성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날 밤 가즈코의 오두막을 찾아가 이 사실을 몰래 알려주었습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가즈코는 한밤중에 옷가지 몇 벌만 챙긴 채 전 전력으로 정글 깊은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녀는 뱀과 도마뱀이 드글거리는 바위틈 동굴에 숨어, 야생 과일과 빗물로 연명하며 무려 33일을 버텄습니다. 그리고 1950년 6월 26일, 섬 해안을 지나던 미군 초계함을 발견하고 바다로 뛰어들어 극적으로 섬을 탈출하게 됩니다.
가즈코가 탈출한 지 정확히 1년 뒤인 1951년 6월 26일, 섬에 남아있던 19명의 일본인 남성들도 마침내 미군에 의해 구조되어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패전을 믿지 못하던 그들은 일본의 가족들이 보낸 편지와 신문을 보고서야 비로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일본 사회는 이 '아나타한섬 사건'에 열광했습니다. 매스컴은 연일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쏟아냈습니다. 대중은 문명이 거세된 섬에서 벌어진 살육의 진실보다, 한 명의 여성이 32명의 남성을 어떻게 지배했는지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언론은 가즈코에게 '아나타한의 여왕벌', '남자들을 파멸로 이끈 마녀', '요부'라는 잔인한 낙인을 찍었습니다. 1953년에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이 이루어졌고, 가즈코는 생계를 위해 본인이 직접 그 영화와 연극에 출연하며 자신을 조롱하는 대중 앞에 서야 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스트립쇼 무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법과 도덕, 공권력이 부재했던 무인도에서 그녀는 권력자가 아니라, 언제든 소유권이 바뀔 수 있는 가장 취약한 '전리품'이자 피해자였을 뿐입니다. 진정으로 비극을 만든 것은 그녀의 매혹이 아니라, 통제력을 잃어버린 남성들의 집단적 소유욕과 권력욕이었습니다.
고향 오키나와로 돌아가 뒤늦게 재혼하며 평범한 삶을 찾으려 했던 히가 가즈코는, 고립의 후유증과 세상의 냉대를 견디다 결국 1974년 3월, 뇌종양으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겨우 만 50세였습니다. 섬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19명의 남성들 역시 평생을 살인자라는 의혹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며 비참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한순간에 증발했을 때 나타나는 적나라한 본성, 아나타한섬의 비극은 그렇게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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