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8

자수궁과 명나라 여인 굴씨(屈氏) 이야기

 <옥인동 45번지 현 군인아파트>
문종실록; "임금이 무안군(이방원에게 살해된 이복동생 방번)의 예전 집을 수리하도록 명하고 이름을 자수궁(慈壽宮)이라… 선왕(세종)의 후궁을 거처하도록 함이었다.“ (1450년)
뒷날, 연산군 생모 폐비 윤씨, 중종 비 단경왕후도…
광해군8년 경덕(=>경희궁), 인경, 자수 등 궁을 지으며 인왕산 아래 인가에 수천채를 철거했는데, 이원(尼院; 비구니들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도 활용, 많을 때는 5천여명의 비구니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인조반정후 자수궁은 '자수원(慈壽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경복궁에서 자수궁 가는 길 사이에 있던 백운동천(白雲洞川)에 '자수궁교(慈壽宮橋)'라는 돌다리를 세워졌었는데, 1927년 백운동천에 암거 공사를 진행하며 헐렸다. '자수교(慈壽橋)', '자교(慈橋)'라고도 불렸다. 근처 교회 이름도 '자교교회'가 있다.

명나라 여인 굴씨 (明國宮女 屈氏, 1638 입국)
明나라 패망 => 淸 황실 귀속 => 조선으로…
仁祖14(1636)에 일어난 병자호란 강화조약에 따라 심양(瀋陽)에 인질로 있던 소현(昭顯)세자 귀국 때 함께…
천주교 선교사 아담 샬 주선… 세례 받은 5 환관 + 4 궁녀 함께 입국?
1645년 소현세자 귀국 후 두 달 만에 죽자 淸 환국령
오랑캐 나라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자수원에 머물다가 70세에 사망
비파 잘 탔고, 손가락과 휘파람으로 인왕산의 새와 짐승 불러내 대화… 길들이는 방법을 보급하기도…
고향 가는 큰 길 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 따라 고양 장령산 기슭에 안장
선비 근곡 김숙(芹谷 金璹)이 ‘屈氏過墓’ 詩도…
似羅裙花似鈿 (사라군화사전) 풀잎은 비단치마요, 꽃은 비녀 같구나.
斷原埋玉幾經年 (단원매옥기경년) 이 언덕에 그대 묻은 지 그 몇 해던가
年年寒食淸明節 (년년한식청명절) 해마다 한식 청명절엔
惟有宮娥送紙錢 (유유궁아송지전) 명나라 궁녀 위해 지전이나 보낼까 하네.
2001년 4월 묘역 정비
墓碑 前面 「昭顯世子淸國瀋館侍女 屈氏之墓」
後面 「昭顯世子께서 淸나라 瀋館에 계실 때 淸 太宗이 世子의 侍中을 들게 하였다. 世子께서 還國時(仁祖23年, 1645年) 入宮하여 계시다가 돌아가셨으며, 本人 遺言에 따라 故鄕 가는 길목인 이곳에 모시었다. 2001年 4月 日 建立 昭顯世子 宗中」

자수궁교(慈壽宮橋) 터 -「굴」씨가 새와 놀던 ‘굴다리’, ‘새다리’ …
1830년 경에 만든 「한경지략」에서는 ‘자수궁교’ 로, 1840년 경에 만든「수선전도」에는 “자수교”로 표기
옥인동 19-33 일대, 근처 자수궁에서 따온 이름
현 신한은행 효자동지점과 종로프라자 약국 위치에 있었으나, 자하문 길을 확장할 때 복개…
근처 자교교회는 자수궁의 자(慈)를 자주색 자(紫)로 바꾸고 다리교(橋)를 그대로 사용한 이름이다.

[참고] 현 자하문로는 왕복 4~6차선 넓은 도로.
1970년대 말까지는 청운동에서 시작한 하천이 이 도로의 현재 서쪽 변을 따라 흘렀다. 백운동천(白雲洞川)- 청계천 본류다. 1930년쯤에 복개되고 나란히 늘어선 여러 집들이 철거되면서 현재의 자하문로가 된 것이 1978년. 효자아파트가 건립되고 9년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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