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31

“10월의 마지막 밤”ㅡ 철학적 접근

이용의 〈잊혀진 계절〉(1982), 흔히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불리는 노래다. 그 넘치는 감성 분위기를 누르고  그 안에 담긴 시간·기억·존재의 철학을 중심으로 해석해보는 쓸데없는 수고를 해봤다 ㅎㅎ

🌙 10월의 마지막 밤, 철학이 머무는 자리  ―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통해 본 ‘시간과 기억’의 사유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10월의 마지막 밤을”
그 첫 구절이 들려오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시간의 강 한가운데로 되돌려진다. 그런데 이 노래는 단순한 이별의 회상이 아니다.
‘기억’이라는 인간의 존재 방식,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노래이기도 하다.
https://youtu.be/sMCSKMGMZPU?si=9ZlOquKGMwDJNnuL
1. 기억은 ‘현재 속의 과거’다
“시간은 멀어져 가지만 / 여전히 잊을 수 없어요”
이 문장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기억의 본질을 말해준다.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기억이 작동하는 자리는 언제나 ‘지금’이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의식의 심층에 잠겨 있을 뿐”이라 했다.
〈잊혀진 계절〉의 화자는 그 잠겨 있던 기억을 꺼내 현재에 불러온다. 그 순간 과거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존재 방식’이 된다.

2. 잊혀짐의 미학 – ‘없어짐’이 남기는 것
“다시 못 올 그 날을 위하여 / 우리는 얼마나 사랑했나”
이 구절은 사라짐의 아픔보다는, 사라짐이 남기는 존재의 흔적을 보여준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을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Dasein)’라고 했다.
우리의 사랑도, 관계도, 결국 시간 속에 던져져 소멸을 전제로 한 아름다움을 갖는다. ‘잊혀진 계절’은 바로 그 소멸의 과정이 만들어내는 유한성의 빛을 노래한다.
사라졌기에 더욱 선명해지는 시간, 그것이 바로 이 노래의 미학이다.

3. ‘10월의 마지막 밤’ ― 경계의 시간
10월의 마지막 밤은 계절의 경계이자, 한 해의 감정이 수그러드는 시간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 따뜻함과 냉기 사이의 모호한 틈. 철학적으로 보면 이는 “존재와 부재의 문턱”이다. 그 문턱에서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존재로 드러난다.
이 노래가 매년 이 시기에 유독 많이 들리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이 경계의 시간 속에서 “지나간 것들을 다시 살아보려는 본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4. 잊혀진다는 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노래의 제목은 ‘잊혀진 계절’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노래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그 자체가 “기억의 역설”이다. ‘잊혀진 것’을 노래함으로써, 오히려 ‘기억의 지속’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이 말한 ‘회상(anamnesis)’의 개념과도 닮아 있다.
진리는 새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었던 것을 되살리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잊혀진 계절 또한, 사실은 잊혀지지 않은 계절이었는지도 모른다.

5. 감성에서 철학으로 ― ‘기억의 계절학’
〈잊혀진 계절〉은 감성의 노래이지만,
그 안에는 “기억이 어떻게 시간 속에서 우리를 구성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숨어 있다.
우리가 매년 10월의 마지막 밤에 이 노래를 듣는 이유는 그때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사랑, 우리의 잊혀진 것들을 다시 한 번 ‘현재’로 불러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결국 이 노래는 말한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계절의 뒤편에서,
다시 불려질 그 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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