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틀린 예측을 믿는가?— 확신은 왜 정확하지 않은가?
우리는 속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
TV에 나오는 전문가, 베스트셀러 저자, 세계적 석학...
그들은 미래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한 심리학자의 20년 연구는, 이 믿음을 정면으로 부숩니다.
10여년전 출판된《슈퍼포캐스팅: 예측의 기술과 과학》(2015) (저자: Philip E. Tetlock, 공동저자 Dan Gardner)에서는 수만 건의 정치·경제 예측을 추적한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측은, 단순한 통계적 기준선보다, 크게 낫지 않았습니다.
확신은 강했지만, 정확도는 평범했습니다.
심지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인물일수록, 예측력이 더 낮은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계속 그들을 믿을까요.
답은 불편합니다.
우리는 결과를 보고 나서, 기억을 고쳐 쓰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말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고.
이것이 사후 과잉 확신 편향입니다.
틀린 예측은 잊히고 맞은 장면만 남습니다.
확신은 능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확신과 정확도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테틀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 정보기관이 후원한 예측 토너먼트에서, 수만 명을 실험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를 능가하는, 집단을 발견합니다.
그는 그들을 슈퍼포캐스터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내부 정보를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였습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태도였습니다.
이들은 확률로 말했습니다.
70퍼센트.
55퍼센트.
30퍼센트.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조용히 수정했습니다.
자존심 대신 업데이트를 선택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정적으로 말하는 고슴도치형 사고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여우형 사고가, 훨씬 정확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1798년 Thomas Robert Malthus는, 인구 증가가 식량 생산을 앞지른다고 예측했습니다.
논리는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기술 혁신과 농업 발전이 계산을 바꿨습니다.
1968년 Paul R. Ehrlich는, The Population Bomb에서 대규모 기근을 경고했습니다.
1972년 The Limits to Growth는, 자원 고갈을 예측했습니다.
그 예측들은 일부 경고로서 의미는 있었지만, 당시 단정적 시간표는 빗나갔습니다.
문제는 계산이 아니라 확신이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Yuval Noah Harari는, AI가 인간의 의미 체계를 바꿀 것이라 말합니다.
Elon Musk는 인류가 화성으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은 강렬합니다.
그러나 강렬함은 정확함과 다릅니다.
테틀록의 연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확신을 믿습니까.
아니면 확률을 계산합니까.
예측의 기술은 미래를 맞히는 기술이 아닙니다.
틀릴 준비를 하는 기술입니다.
확신하는 사람은 박수를 받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수정하는 사람이 더 오래 맞춥니다.
지금 우리는, 다시 거대한 예언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큰 목소리의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미래는, 끝까지 배우는 사람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단정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업데이트하고 있습니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